수백 년 견딘 ‘평범’의 진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경주시 월지에서는 금동손(왼쪽)과 금동불입상을 비롯해 수만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경주博·태안해양유물전시관
불상서 떨어진 ‘금동손’ 등
소박한 유물 테마로 특별전

박물관의 2024년은 온갖 진귀한 국보와 보물로 빛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 국보를 지역 박물관에 대여하는 ‘국보 순회전’으로 전국적 흥행을 이끌었고 마침내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은 기존 박물관 유물에 익숙한 관람객마저 수차례 다시 찾아가게 했다. 최근 막을 내린 대구간송미술관의 개관 기념전시 ‘여세동보-세상 함께 보배 삼아’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해 김홍도, 김득신 등 국보를 앞세워 지역 전시로는 이례적으로 20만 구름 관중을 동원했다. 그러나 국보와 보물이 빛나기 위해선 묵묵히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평범한 유물들의 역할도 큰 법. 그간 국보에 가려져 무심코 지나쳤던 소박한 유물들의 진면모를 조명해 주인공의 위치에 올려놓은 두 전시가 이목을 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지난 10일 개막한 특별전 ‘소소하고 소중한’과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의 기획 테마전 ‘달라도 좋아, 평범해도 괜찮아’가 그 주인공이다.

◇신라 태자가 거닐던 호수에서 발견한 신비… 경주 ‘소소하고 소중한’전 =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며 박물관 경력 34년차인 관장부터 3년차 막내 학예사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전시장 뒤편의 수장고를 꼼꼼히 살폈다. 12명의 큐레이터들은 30만 점에 이르는 수장품 중 저마다의 독특한 이야기를 간직한 채 잠들어 있던 44건 144점의 유물을 엄선해 깨웠다. 그중에서도 양희정 학예연구관이 선정한 4.8㎝ 크기의 ‘금동손’은 단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경주 월지(옛 안압지)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조립돼 완성된 불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비로움은 관람객들에게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월지에서 출토된 금동불입상과 나란히 전시된 느낌이 오묘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더불어 박달나무·대추나무 등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빗을 비롯해 고대인들의 삶을 함께한 생활 유물도 전시장 한편을 차지했다. 막내 학예사인 임익균 학예사의 선택이다. 주로 무덤에서 출토되는 나무 빗을 통해 망자가 내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내길 바랐던 옛사람들의 애정과 정성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내년 3월 9일까지.

◇보물선에서 건져 올린 평범함… 태안 ‘달라도 좋아, 평범해도 괜찮아’전 =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화려하고 완전한 출토 유물 대신 돌과 뼈처럼 흔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유물을 전면에 내세워 파격을 꾀했다. 총 5가지의 주제와 그에 맞는 공간으로 구성된 전시는 해양 출토 유물의 대표 격인 항아리를 과감히 제외했다. 대신 칼과 낫을 가는 돌멩이인 숫돌이 그 자리에 놓였다. 또한 별다른 무늬가 없는 접시, 작디작은 청자 기름병 등을 통해 문양과 크기로 관람객을 압도하기보다 유물이 견뎌낸 시간 자체를 드러내고 있다. 전시의 마무리에는 보물도 모습을 드러내긴 한다. 다만 새로운 관점이다. 지난 2007∼2008년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발견된 ‘태안선’ 출수(出水) 유물인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는 언제나 시선을 사로잡던 앞모습 대신 뒷모습을 내보인다. 이처럼 잠들어 있던 유물들의 숨겨진 면모는 그동안 빛나는 국보뿐 아니라 평범하거나 불완전한 유물까지도 보존하고 관리해 온 학예사들의 정성 어린 시간을 증명한다. 내년 6월 5일까지.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