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전임 감독이 프로팀으로? 배구협회 기준 논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남자 배구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선임된 브라질 출신의 이싸나예 라미레스 감독은 최근 V리그 남자부 KB손해보험의 신임 감독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전임제로 선발했던 남녀 배구대표팀 감독이 모두 프로팀으로 떠났다. 대한배구협회의 기준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V리그 남자부 KB손해보험은 최근 공석인 사령탑에 브라질 출신의 이싸나예 라미레스 감독을 낙점하고 선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 시즌 개막 전 스페인 출신 미겔 리베라 감독을 야심차게 선임했던 KB손해보험은 정작 개막조차 함께 하지 못하고 현재 아르헨티나 국적의 마틴 블랑코 수석코치에게 임시로 팀을 이끌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블랑코 수석코치 체제로 시즌을 완주할 수 없다는 판단에 새 감독을 찾았고 지난 3월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라미레스 감독과 접촉했다. 라미레스 감독이 대표팀을 이끄는 데다 KB손해보험의 주전 세터 황택의가 대표팀에서도 주력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 라미레스 감독은 브라질 대표팀 코치, 파키스탄 대표팀 감독 등을 거쳐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항저우아시안게임 당시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아래인 파키스탄을 이끌고 한국을 격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KB손해보험의 라미레스 감독 선임은 과정상의 문제가 지적됐다.

대한배구협회는 라미레스 감독 등 남녀 대표팀에 외국인 지도자를 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뽑았다. 이는 전임 세자르 여자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을 지휘하는 동안 해외팀의 코칭스태프로 활약해 상대적으로 대표팀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배구협회는 올해 초 두 감독을 선임하며 전임 감독으로서 대표팀 소집 기간 외에는 국내 선수 분석, 유소년 지도, 국내 지도자와 교류, 국제 배구 동향 연구 등에 전념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라미레스 감독이 KB손해보험 지휘봉을 잡으면 사실상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이유가 사라진다. 특히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게 여겨졌던 유소년 지도 부문은 전혀 신경을 쓸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해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문화일보에 "처음 선임할 때는 전임계약이었으나 국내리그에 한해 감독 겸임을 허락해주기로 했다. 이는 두 감독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대표팀 감독이 리그에서 국내 지도자들과 교류도 하고 선수 파악도 한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여자대표팀 감독도 국내 팀의 제안이 오면 겸임을 허락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배구협회는 설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페르난도 모랄레스 여자배구대표팀 감독은 이미 지난달 V리그가 아닌 자국 리그 팀의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이다. 사상 처음으로 나란히 남녀 대표팀 감독을 외국인으로 선발, 한국 배구 발전에 전념해야 한다는 애초 전임제 감독 선임의 취지를 배구협회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전임제로 뽑았던 여자 배구대표팀 감독의 푸에르토리코 팀 감독 선임을 막지 못한 배구협회가 남자 배구대표팀 감독에게도 뒤늦게 프로팀 겸임의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다.

전임제 감독 선임을 위해 금전적 지원을 했던 한국배구연맹도 2019년 A 감독의 V리그 부임설과 관련해 잡음이 일자 임시 이사회를 열고 대표팀 감독을 계약 기간 내 연맹 내 구단 감독으로 선임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 KB손해보험의 이번 결정을 두고 반길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실제로 KB손해보험의 라미레스 감독 선임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V리그 남자부 구단은 반발하고 나섰다.

이 소식을 접한 국내 지도자 사이도 KB손해보험의 이번 감독 선임 과정과 관련해 불만의 목소리가 터지고 있다. 한 국내 배구 지도자는 문화일보에 "우리 배구계가 외국인 지도자에게는 뭐든 너무나도 관대한 것 같아 아쉽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 황당하고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오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