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멈춰도 경제는 돌아가야 한다[시평]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尹 탄핵 이전에도 정치는 실종
巨野는 입법 남발과 단독 예산
대통령은 거부권 저항 쳇바퀴

정치 혼란 장기화 땐 경제 타격
제도적 개혁 표류는 뼈아픈 일
경제 분야라도 초당 협력 절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는 우리나라 정치를 완전히 멈추게 했다. 물론 그 결과 여야는 더욱 바쁜 정치 행보를 하고 있지만, 나라를 운영해야 할 가장 중요한 헌법기구들이 정상적인 작동을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걱정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앞날이다.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는데 과연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것인지, 이런 정치적 혼란이 우리 경제에 큰 부정적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우리 경제는 그런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말을 맞아서 그런지 강남북의 주요 식당가나 곳곳의 전통시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경제의 미시적인 저변이라고 할 서민 경제가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주요 산업 분야들도 활력을 잃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 등은 물론 원자력·방위 산업 등도 최근 새로운 활력을 보이면서 세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산업들을 이끌어가는 대기업들은 그런 산업들의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 국내외로 뛰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정치가 경제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가 더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이전에도 우리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는지조차 의문이긴 하다. 특히,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일수록 더욱 정치 행위는 멈춰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야당은 정부와 여당이 정상적인 국정을 운용하지 못할 정도로 국회에서의 다수 의석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탄핵과 특검을 남발해 왔고, 정부와 협의도 없는 단독 예산안을 가결하기까지 했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 야당 반대 속의 인사 강행 등으로 이에 맞서 왔다. 대통령실과 국회는 거의 타협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자신들의 갈 길만 달려온 셈이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한 ‘절충과 타협’이라는 진정한 정치 행위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와 대통령실은 자신들만이 민생, 경제를 챙기는 듯한 행보를 해 왔다. 그런 가운데서 양측은 종종 거의 반대되는 정책 기조를 내세우기도 했다. 때로는 경제 현장을 찾아서 자신들만이 경제를 책임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써 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실질적인 ‘정치의 중단’ 속에서도 한국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었고, 특히 세계 경제 속에서의 우리 수출은 꾸준한 성과를 내어 왔다. 아마도 이런 ‘정치적 중단과 위기’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분야라면, 각 정권의 정책 기조에 맞춰 생존을 모색해 왔거나,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사업에 기대어 온 기업들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대통령이나 국회가 나서지 않더라도 즉, 정치가 안정되거나 혼란을 겪거나 간에 우리 경제는 그 저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본다면 국내외적으로 큰 위기들이었던 석유, 외환, 세계 금융, 코로나19 등을 우리나라가 잘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수출이 주도해 온 한국 경제가 저력을 보여준 덕분이었다. 어쩌면 우리 경제의 저력과 활력이 그다지 경쟁력을 보이지 못해 온 정치를 떠받쳐 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이 혼란을 넘어서서 정치적 안정을 찾은 이후에도 대통령이든 국회든 마치 자신들만이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듯한 행보는 삼가야 할 것이다. 서로의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만이라도 ‘절충과 타협’이라는 고도의 정치 행위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다만, 지금의 정치적 혼란이 오래 계속된다면 경쟁력을 자랑하는 산업들에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외교·통상 면에서 차질을 빚으면서 해외로 뛰고 있는 기업들에 어려움을 주기 시작했다. 더욱이 재정 운용이 안정되지 않고 규제의 개선을 비롯한 제도적 혁신도 ‘정치 중단’ 때문에 미뤄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가 한 걸음 더 도약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정치가 안정되고 정치와 경제가 함께 잘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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