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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센터 규제’ 전력계통영향평가… 수도권 설립 원천봉쇄
관련 평가, 8월부터 시범운영
지방재정 기여 등 따지는 방식
지을 지역 낙후할수록 고득점
현재까지 신청한 사업자 없어
통신 전용회선 서울서 멀수록
속도 느려지고 관리비도 늘어
업계 “평가 도입 재검토해야”
美 등선 데이터센터 도심 밀집
초거대 인공지능(AI) 가동을 위한 필수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 신규 설립이 중첩된 규제에 가로막혀 원천 차단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빅테크 데이터센터들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를 받으면서 도심에 집중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방분권 정책 여파로 막대한 비용 부담을 떠안아야만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AI 산업의 주도권을 둘러싼 격전 속에서 자칫 규제에 가로막혀 우리나라가 낙오될 위기를 맞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반도체와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타 산업은 해당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2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기반으로 지난 8월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받기 위해 신청한 사업자는 지난 19일까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신규 또는 증설로 10㎿ 이상 전기를 쓰려는 사업자들이 필수로 받아야 하는 평가다. 기술(60점)·비기술(20점)·정책적(20점) 항목에서 70점 이상을 맞아야 전력수급 심의 대상으로 선정된다. 산업부는 연간 약 190건의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추정했으나 실상은 사뭇 달랐다. 한남현 한국건축전기설비기술사회 회장은 통화에서 “신청해도 통과하지 못할 게 뻔하니 신청을 못 하는 것”이라며 “민간 사업자가 해당 평가에서 고득점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부가 해당 평가를 도입한 목적은 대규모 전력 수요시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함이다.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 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안’은 지난달 입법예고됐다. △지역 낙후도 △지방재정 기여도 △직접 고용 효과 등 항목에서 점수를 매긴다. 시설을 지으려는 지역이 낙후할수록, 향후 20년간 낼 수 있는 지방세가 많을 것으로 예상될수록 고득점을 준다. 산업부 전력계통혁신과 관계자는 “시범 사업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 뒤 본격 운영할 예정”이라며 “기간은 미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 분산이라는 정책 목표가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에게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업계는 통신 전용회선이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관리비가 늘고 통신 속도는 느려진다고 토로한다. 40㎿ 규모 데이터센터 한 개가 수도권 바깥 지역으로 약 100㎞ 이전할 경우 수도권 대비 회선요금은 해마다 50억 원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강승훈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팀장은 “운영 인력이 24시간 근무해야 하는데, 정주 여건이 부족한 곳에 시설을 짓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전문 대행사를 통해 진행해야 하는 전력계통영향평가 비용 역시 부담이다. 수전 용량 10㎿당 최소 1억5000만 원이 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대행 비용이 천차만별이니 상한선을 정해줄 것을 산업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평가 대행자 조건을 충족하는 전문가가 국내에 많아야 스무 명 안팎일 것으로 추산되면서 담합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막대한 자금 조달이 필요한 데이터센터 개발 사업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업자들이 전력 공급 가능 여부도 알지 못한 채 투자자를 모집하고 평가서를 쓰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강 팀장은 “업계에선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사실상 ‘데이터센터 금지법’으로 보고 있다”며 “평가 도입을 전면 재검토하고 규제가 아닌 성장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전기를 많이 쓰는 반도체·2차전지·디스플레이·바이오 등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서 지정·보호하는 산업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돼 데이터센터만 주 타깃이 된 규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러한 규제는 도심 주변에 분포한 글로벌 데이터센터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으로 지적된다. 미국의 경우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허브로 불리는 버지니아주 애시번을 포함해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일리노이주 시카고, 텍사스주 등에 데이터센터가 밀집해 있다. 특히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메타·구글 등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수십 개가 있는 버지니아주에선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약 70%가 처리되고 있다.
구글이 설립했거나 세울 예정인 데이터센터도 대부분 대도시권에 있다. 아시아에 설립한 데이터센터는 대만(장화현·가장 인구가 많은 행정구), 싱가포르, 일본 지바현 등 세 곳인데 모두 대도시권이다. 구글은 “대만은 혁신과 외국 투자를 지원한 역사를 가진 선도적인 하이테크 허브”라며 “신뢰할 수 있는 인프라, 세계적 수준의 인재, 안정적이고 수용적인 규제 환경에 투자했다”고 입지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예린 기자 yr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