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범용반도체 타깃 불공정무역 조사

■ 트럼프 ‘고관세 정책’ 포석 전망

USTR “中 국가주도 공급 확대
반도체 지배행위·정책 등 조사”

中 “글로벌 공급망 혼란 가중
美, 자국에 보조금… 자기모순”

베이징=박세희 특파원 saysay@munhwa.com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중국산 레거시(범용) 반도체를 대상으로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에 착수했다. 첨단 반도체에 이어 범용 반도체까지 제재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차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는 평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무역대표부(USTR)는 23일 “통상법 301조에 따라 중국의 반도체 지배를 위한 행위, 정책, 관행에 대한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캐서린 타이 USTR 대표는 “이번 조사는 중국이 국가 주도로 반도체 공급을 대규모로 늘린 것으로부터 미국 및 기타 반도체 생산업체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자국 반도체 기업에 불공정한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고, 이에 힘입은 중국 반도체 기업이 저렴한 가격의 반도체를 대거 공급함으로써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미 상무부에 따르면 반도체를 사용하는 미국 제품의 3분의 2가량이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이 대표는 “반도체 산업에 전례 없는 투자를 지원하겠다고 한 조 바이든-카멀라 해리스 행정부의 약속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의 무역 관련 조사에 보통 수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조사 후 보복 결정권은 내년 1월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갖게 된다. 이에 이번 조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공언해온 대로 중국산 제품에 60%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포석을 깔아준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 관련 불공정 무역행위가 있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미국 정부는 통상법 301조에 따라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 레거시 반도체는 자동차나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에 널리 사용되고 있어 중국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무역 규제는 중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 정부의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에 “강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한다”며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담화문을 통해 “미국의 새 (통상법) 301조 조사 개시는 국내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과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리고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과 소비자의 이익에도 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즉각 잘못된 처사를 중단하기를 촉구한다”며 “중국은 조사 진행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모든 필요한 수단을 취해 자기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고 보복 조치를 시사했다. 이어 “미국은 반도체법으로 자국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고 미국 기업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데도 오히려 중국을 비난하고 중국의 산업 위협을 과장하는데, 이는 명백한 자기모순”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