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속 ‘詩’ 읽고 작곡… 러시아인 삶과 함께한 ‘종소리’ 담아[이 남자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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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라흐마니노프, 합창교향곡 ‘종’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종’
친구 제자가 직접 읽고 부탁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상황별 종소리 4악장에 묘사

합창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다. 교향곡은 본래 4악장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기악음악인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인 합창을 더함으로써 ‘함께 울리다’라는 의미의 진정한 교향곡(심포니·symphony)을 구현해냈다. 이는 후대의 작곡가들에게도 크게 영감을 줘 여러 합창교향곡을 작곡하도록 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가 ‘합창교향곡’이란 부제를 가진 라흐마니노프의 ‘종’이다.

1912년 라흐마니노프는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와 스위스에 머물던 중 익명의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편지엔 에드거 앨런 포의 시 한 편이 실려 있었다. 부디 라흐마니노프 선생께서 이 시를 읽고 이에 어울릴 만한 작품을 한 곡 작곡해주십사 하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보낸 인물은 첼리스트인 마리아 다닐로바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친구이기도 한 첼리스트 미하일 부르니크의 제자였다.

다닐로바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첼로를 전공 중이던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시 ‘종’을 읽게 된다. 원어인 영어로 된 것은 아니었고 러시아의 시인인 콘스탄틴 발몬트가 러시아의 정서를 불어 넣어 옮긴 번역본이었다. 러시아인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결코 종소리와 떨어져 살 수 없다. 마을 어귀의 종소리는 대축일의 이른 아침이나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인 결혼식에도 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장례식에도 울려 퍼지며 인생의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와도 같기 때문이다.

다닐로바는 시를 통해 공명하는 교회의 종소리가 음악 작품으로 탄생되길 바랐다. 이를 가능케 할 이는 오직 한 사람 라흐마니노프뿐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당시 로마 스페인 광장 근처에 머물던 라흐마니노프 역시 편지에 실린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시를 통해 진동하는 종소리는 라흐마니노프의 과거의 추억과 미래를 향한 바람 모두를 강하게 공명시킨 것이리라. 라흐마니노프는 즉시 그녀의 청원대로 작곡에 착수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는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사를 종소리를 통해 대비시키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작품을 그려내고 있지만 한 인간의 탄생과 결혼, 불안과 공포, 죽음이라는 보다 강렬한 테마로 4악장으로 구성된 합창교향곡으로 탄생시켰다.

이 대규모의 합창교향곡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한겨울 썰매의 경쾌한 종소리부터 결혼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 전쟁의 공포를 연상케 하는 경보의 종소리,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 등 각양각색의 종소리를 그려내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열정을 갖고 이 작품을 작곡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도 말한 바 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라흐마니노프 합창교향곡‘종’

전체 4악장의 합창교향곡으로 1912년 작곡에 착수해 같은 해 완성됐다. 이듬해인 1913년 11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됐다. 작품은 다양한 종소리를 통해 인간의 생사고락을 담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처연하고도 우울한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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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은 ‘은종’으로 썰매에 달린 은종을 연상케 하는 음악과 함께 테너의 독창, 합창의 허밍코러스가 일품이다. 2악장은 ‘금종’으로 소프라노가 결혼의 기쁨을 노래하고 3악장 ‘동종’은 유일하게 독창이 등장하지 않는 악장으로 장례의 종소리를 연상케 한다. 피날레인 4악장은 ‘철종’으로 베이스의 독창과 함께 다시 한 번 장례식을 연상케 하는 선율이 흐르다가 이내 화려한 종소리와 함께 대미를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