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아닌 자유를 위해… 우리는 긴 삶을 항해하지[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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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로드 스튜어트 ‘세일링’

유명한 사람은 보통 3단계를 거친다. 알아보면 반갑다. 알아주면 고맙다. 알아채면 두렵다. 1단계가 인지도, 2단계가 호감도라면 3단계는 신뢰도다. 이게 무너지면 끝이다. 명성은 누리는 게 아니라 누르는 것이다. 남이 아니라 나를 눌러야 한다.

유명한 사람이 자리에 연연하면 그때부터 흔들린다. 측근의 감언에 도취하면 의자에 전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세상 누구도 ‘언제나 그 자리에’(원곡 가수 신효범) 머물 수는 없다. ‘내가 앉은 이 자리를 매일 넘봐 피곤해’(2NE1 ‘내가 제일 잘나가’) 남을 탓하기보다 ‘세상이 내 것이었던 철없던 시절은 안녕 오늘 바보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규현 ‘광화문에서’) 자신을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이수만이 현역 가수 시절 작사·작곡하고 부른 ‘모든 것 끝난 뒤’엔 몹시 어리석은 다짐이 나온다. ‘나는 이 자리를 떠나질 않으리’ 하지만 노래가 끝날 무렵 두 개의 질문이 잇달아 그를 압박한다. ‘누구를 기다리나 무엇을 바라는가’

나잇값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내 나이가 어때서’(원곡가수 오승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대꾸한다. 문제는 누굴 사랑하느냐다. 가까운 사람만 사랑으로 보답하면 문제가 된다. 드러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이름값에 먹칠하고 유명인은 가면을 벗게 된다. 밥값은 남이 내도 이름값은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현직에선 바닥이었지만 전직에선 봉우리가 된 지미 카터(1924∼2024)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대통령이다. 인생을 ‘100분 쇼’라고 하면 이분은 자리에서 물러난 후(1981)부터가 오히려 하이라이트다. 자리에 있을 땐 성적표가 초라했다. 재학 중엔 열등생이었는데 졸업 후에 최우등생이 된 셈이다.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 비로소 목표(인권 신장과 평화 회복)를 이룬 비결은 대관절 뭘까. 시한(임기)에 쫓기지 않고 넉넉하게 시간표를 짰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표를 이정표로 바꾼 사람이다.

음악동네에서 카터를 추모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로큰롤 대통령’이라는 기록영화가 있는데 주인공이 바로 이분이다. 영화(원제 Jimmy Carter: Rock & Roll President)엔 밥 딜런, 보노(U2), 윌리 넬슨, 폴 사이먼 등 유명 가수들이 대거 등장한다. 카터는 밥 딜런의 노랫말이 그 어떤 대통령의 말보다 통찰력 있고 영향력 있다고 언급했다. 음악은 세상의 소리(音)를 즐거움(樂)으로 만드는 예술이다. 정치는 사람을 갈라놓아도 음악은 우리를 만나게 한다.

카터는 노벨평화상(2002)뿐 아니라 그래미상도 받았다. 그것도 무려 세 번(2007, 2016, 2019). 노래는 아니고 그가 쓴 책들을 직접 읽어서 최고 낭독앨범(Best Spoken Word Album)상을 받았다. 세 번째 수상작이 그의 일생을 축약해 보여준다. 제목은 ‘믿음: 모두를 위한 여정’(Faith: A Journey for Al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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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항해(Sailing)의 여정이다. 로드 스튜어트가 ‘세일링’을 리메이크(원곡가수 서덜랜드 브러더스)한 게 50년 전(1975)이다. 폭풍우(Stormy waters)가 몰아칠 수 있는데도 왜 배를 몰고 항해하는가. 당신(인류)에게 다가가기 위해서(To be near you). 더 중요한 건 자리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서(To be free)라는 사실이다.

퇴임 후 카터는 전 세계 무주택자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는 속물, 퇴물이 아니라 인물, 거물로 우뚝 섰다. 마침내 그는 흙으로 돌아간 걸까. 아니다. 그의 항해 덕분에 비를 피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는 아름다운 건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 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