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만 터지면 희생양 찾아… 연대해야 참사 극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

■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 인터뷰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고
재난 원인 두고 자책해선 안돼

무안 찾은 상담요원·봉사자들
‘국민 트라우마’ 회복에 큰 힘”

“재난은 나만 잘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닙니다. 희생양을 찾으면서 ‘온라인 재판’을 벌이는 건 트라우마 회복을 어렵게 합니다. 우리가 연대할 때 참사를 극복하는 엄청난 힘이 생깁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족에 대한 심리지원 컨트롤타워인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지난 7일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참사 직후 ‘통합심리지원단’ 회의를 곧바로 소집해 재난심리교육을 받은 인력 총 320명을 급파했다. 심 센터장은 참사 현장에서 이들을 이끌면서 유족에 대한 심리적 응급조치를 이행했다.

심 센터장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난은 냉정하게 말하면 ‘랜덤’”이라면서 “방어운전을 해도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는 만큼 재난 원인을 두고 자책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재난은 부자나 권력자라고 해서 피해가지도, 장소를 가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재난은 정치화되면서 갈등과 반목을 낳고 있다. 이번 참사에서도 지역과 진영논리를 둘러싼 혐오 발언이 끊이지 않았다.

심 센터장은 “재난이 터지면 희생양을 찾아 공격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난은 우리 사회 트라우마 회복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혐오 발언도 ‘내겐 재난이 안 닥칠 것’이란 인식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등 숱한 재난현장을 누빈 심 센터장이 유족과 피해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였다. 그는 “재난 앞에선 겸손해야 한다”며 “피해자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례를 마친 유족들은 트라우마 치료 등 지속적인 심리지원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엔 보건소 단위인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전문요원들이 투입된다. 심 센터장은 “전남과 광주에 유족들이 많은 편인데, 상담전문요원들이 본인 지역에 대한 책임감이 인상 깊을 정도로 강했다”며 “자신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요원들의 강한 소명의식이 유족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엄청난 힘이 될 수 있다”며 “참사에 맞서 사회구성원이 자원봉사나 악플에 대한 자정활동 등으로 연대하면 집단 트라우마 회복도 힘을 받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재난은 선진국에서도 일어난다. 하지만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은 사후 대응이다. 심 센터장은 “재난 대응이 매번 완벽할 수 없겠지만 과거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는 교훈을 얻어야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사 진상 조사 과정에 유족이 참여하는 방안도 트라우마 회복을 돕는다고 봤다. 그는 “유족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 ‘왜’라는 것”이라며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 참사는 결국 모두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고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