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핀 역동적 색채… 서울 녹이는 ‘아프리카 생명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민 가정에서 자라면서 다층적 문화를 경험한 툰지 아데니-존스 작가가 다음 달 22일까지 서울 강남구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연다. 서아프리카 요루바 민족이 사용하는 강렬한 원색에서 영감받은 신작들을 선보인다. 전시 ‘무아경(Immersions)’의 전경. 화이트 큐브 제공

■ 툰지 아데니-존스, 첫 한국 개인전 ‘무아경’

강렬한 채색의 주목받는 英작가
어수선한 서울 살풍경에 맞선듯
붉고 노란빛의 따뜻한 그림 선봬

나이지리아 이민 가정 출신으로
디아스포라적 정체성 탐구 몰입
신체 둘러싼 공간 - 파동 등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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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불일까, 만개한 꽃일까. 서울 강남구 화이트 큐브 서울에 들어서면, 갑자기 계절이 바뀐다. 바깥은 칼바람 부는 차가운 서울인데, 전시장엔 아프리카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뜬 것만 같다. 나이지리아계 영국 작가 툰지 아데니-존스의 첫 한국 개인전 ‘무아경’의 풍경이다. 영국의 대형 갤러리 중 하나로 지난 2023년 서울에 진출한 화이트 큐브는 2주년을 맞는 올해 첫 전시로 강렬한 색채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툰지 아데니-존스의 신작 11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선명한 붉은 물결에 시선을 뺏긴다. 이어 신비로운 보랏빛과 청량한 푸른빛, 그리고 생생한 노란빛들의 향연에 움츠러든 몸이 스르륵 풀린다. 예술에서 인간적인 ‘효능’을 구하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추위로부터,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로부터, 심연에 자리한 근원적 불안으로부터의 구원, 자유, 치유 같은 것. 서울의 살풍경에 정면으로 맞선 듯한 뜨거운 그림들을 들고 온 작가는 그렇게 ‘제5의 계절’로 우리를 이끈다. “자연 속엔 힐링과 영적인 힘이 있다”고 말하며 말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툰지 아데니-존스의 신작 ‘푸른 보랏빛 궤도 운동(Blue Violet Orbit Motion)’의 일부를 확대한 이미지. 아몬드 형태의 눈을 한 인물이 작품 밖을 응시하고 있다. 화이트 큐브 제공

옥스퍼드대와 예일대에서 공부한 작가는 초기에는 정통 사조의 흐름을 따르는 듯했으나, 언젠가부터 자기 정체성의 다양한 층을 하나씩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북미 대륙의 자연, 사람, 음식, 집, 옷, 하늘, 땅,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기까지 모두 품었다가, 다시 큰 호흡으로 뱉어낸 듯하다. 불길이나 꽃잎, 숲처럼 보이는 그림 속엔 늘 사람이 있다. 그것은 신체 전체이기도 하고, 신체 일부분이기도 한데, 물결과 함께 그림 속을 유영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몸을 둘러싼 공간에 집중하면서, 몸이 남긴 진동과 파동을 그려낸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즉, 척추, 어깨 등 신체의 일부는 누군가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들로서 표현된 것이다.

작가는 지난해 4월 베니스비엔날레 나이지리아관에서 선보인 ‘천상의 모임’으로 주목받으며, 지금 세계 미술신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런던, 파리, 홍콩에 이어 서울에서 자신의 네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면서 처음으로 한국 관람객과 만나게 된 그는 “서울의 겨울이 매우 춥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이를 염두에 두고 신작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추운 겨울을 상쇄할 밝고 급진적인 색감, 즉 빨강, 보라, 파랑 등은 그렇게 탄생했다. 또한, 작품에는 은은하게 진주 빛 흰색도 드러나곤 하는데, 이에 대해 그는 “서울을 뒤덮은 하얀 안개, 절제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영감받은 백색도 주요 색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역동성’도 작가가 감지한 한국, 그리고 한국 미술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한국 추상화에서도 느껴지는 예술·사회·문화적 역동성이 나의 그림과 나이지리아의 문화와도 닿아 있기에 이번 전시가 무척 기대된다”고 전했다. 특히, 작가가 최근 몰입하고 있는 건 서아프리카 요루바 민족의 문화다. 이들은 가족 중심적이고 영성과 전통을 중시한다. 작가는 “이들의 철학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동작, 댄스 퍼포먼스, 음식, 좋아하는 색채까지 여러 면모가 최근 나의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푸른 보랏빛 잠수(Blue Violet Dive)’ ‘푸른 보랏빛 탑(Blue Violet Tower)’ ‘펄 화이트 궤도 운동(Pearl White Orbit Motion)’ 등 선명한 작품 제목들은 전시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돕는다. 제목은 대부분 색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특정 형태나 동작으로 이어진다. 제목을 따라 관람객들은 오묘한 빛을 느낀 후, 그 속을 가득 채운 움직임을 찾아 시선을 옮기면 된다. 특히, 작가가 캔버스에 가장 마지막에 더하는 요소인 아몬드 모양의 눈을 놓치지 말 것. 그 눈이 던지는 거침없는 시선은 관람객을 향하고, 동시에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점유하고 관통한다. 눈과 눈이 마주할 때의 긴장감. 그 ‘무아경’에 이르는 순간, 어느새 작가의 팬이 돼 있을지 모른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