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성’ 추측하던 ‘아차산 장성’ 정체, 조선시대 말 목장 성으로 최초 확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보물 ‘목장지도’ 중 ‘진헌마정색도’. 국가유산청 제공

‘백제의 또 다른 왕성?’ 서울 광진구와 경기 구리시의 경계에 있는 아차산부터 동대문구 배봉산에 이르기까지 능선을 따라 길게 둘러쌓은 ‘아차산 장성’을 두고 일각에서는 삼국시대에 축조됐다거나 ‘하남 위례성’으로 추측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 비견될 ‘하북 위례성’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정확한 시대와 용도가 드러났다.

국가유산청 국립서울문화연구소는 지난해 11월부터 약 두 달에 걸쳐 서울어린이대공원 내에 위치한 아차산 장성 일부 구간 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 사복시에서 운영한 ‘살곶이 목장성’으로 추정된다고 22일 밝혔다. 사복시는 조선시대에 말과 수레, 목축에 관한 업무를 맡았던 관청이다. 문헌 기록으로만 운영 근거가 전해지던 사복시는 지난 2023년 종로구청 신청사 공사 중 매장 문화재가 발견되며 실체가 드러난 바 있다.

‘살곶이 목장성’은 사복시에서 관리하던 국영 말목장으로 그동안 보물로 지정된 ‘목장지도’에 수록된 ‘진헌마정색도’, 서울시립대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 등을 통해 서울 동대문구와 중랑구, 성동구, 광진구 일대에서 운영됐던 것으로 추정돼 왔다. 정확한 위치 등에 대해선 안개 속에 묻혀 있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아차산장성 어린이대공원 구간 성벽 조사 현장. 국가유산청 제공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목장성의 벽은 잔존높이 약 3m, 폭은 11m에 이른다. 연구소는 흙을 쌓아 만든 토축 중심부에 일부 석축을 덧댄 구조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자연지형을 활용한 토성을 먼저 축조한 후 마지막 단계에 성벽 안 쪽 방향으로 석축을 쌓아 목장 안에 있는 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막았던 구조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의 명종실록 중 ‘비가 내리는 철이면 토성이 무너져 말이 도망하는 일이 발생하여, 이를 막기 위해 한 면에 석성을 쌓았더니 말이 빠져나가는 일이 감소되었다’는 부분과 정확히 일치하는 축성기법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연구소에 따르면 성벽 기저부, 석축 부근에서는 조선시대 도기편, 자기편이 다수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몽촌토성, 풍납토성 등지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발견되는 것과 판이하게 다른 연대의 유물들이 출토됐다.

물론 이번 조사가 장성의 일부 구간에 대한 조사였으며 일부 구멍을 파 조사하는 시굴조사이기에 유적의 성격을 면밀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살곶이 목장성과 서울 아차산 장성의 실체를 규명한 첫 고고학적 시도로서 의미가 크다.

장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