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내 발 씻겨준 아버지… 가족 헌신 덕에 두번째 삶”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 대학 합격을 기념해 전북 군산의 한 바닷가로 가족여행을 갔던 조용준(24) 씨가 두 팔을 들어올려 힘을 주며 웃고 있다. 조용준 씨 제공

■ 혈액암·희귀병 극복 조용준 씨

설레는 ‘5년만의 가족과 명절’
18세때 첫 발병 20세 또 불운
병상서 공부하며 DGIST 합격

지난 21일 전북 부안군에서 만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25학번 새내기 조용준(24·사진) 씨는 180㎝ 키를 자랑하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6년간 혈액암과 희귀병인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를 앓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조 씨가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가족의 헌신 덕분이었다. 그는 “가족의 사랑 덕분에 ‘두 번째 삶’을 시작하게 됐다”며 웃었다.

조 씨의 아버지 조재호(51) 씨는 족욕이 항암에 좋다는 말에 매일 족욕 통에 물을 받아 아들의 발을 씻겨줬다고 한다. 아버지 조 씨는 “용준이가 혈액암 진단을 받은 뒤로 병실이든 집이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따뜻한 물에 녹차티백을 풀어 족욕을 시켰다”며 “병실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들도 ‘용준이가 아버님 덕분에 호강한다’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조 씨의 남동생은 다리가 불편한 형을 위해 매일 걸어서 15분 거리의 독서실까지 가방을 들어주며 형의 대학 진학을 응원했다. 조 씨의 어머니는 투병하는 아들을 위해 끼니마다 건강식으로 새 밥상을 차렸다. 조 씨는 “항암 치료를 받고 다리가 아플 때 부모님과 동생에게 의지를 많이 하다 보니 가족 사이의 유대감이 커졌다”며 “가족이 없었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오는 6월 혈액암 완치 판정을 앞두고 있다. 이번 설 명절에는 5년 만에 가족과 함께 할머니 댁을 방문해 세배를 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감염 위험으로 홀로 명절을 보냈다고 했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은 것이다.

조 씨는 과거의 투병생활이 자신에게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기 전에는 일상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는데, 지금은 가족·친구들과 보내는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며 “웬만한 일에는 끄떡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게 만들어준 그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혈액암 진단을 받기 전 조 씨는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전교에서 공부도 손가락 안에 들었을뿐더러 달리기 종목으로 전국체전에 학교 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건강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19년 11월, 감기처럼 혈액암을 진단받았다. 6차까지 이어지는 항암치료에 돌입했고, 몸의 모든 수분을 빼앗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조 씨의 체중은 2주 만에 20㎏이 빠졌다.

1년간 이어진 집중치료 끝에 2021년 학교에 복귀했지만 그해 10월 학교 계단을 내려가던 중 다리의 극심한 고통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병원을 찾아가니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건강을 차츰 회복하고 있던 그에게 다시 불운이 찾아온 것이다. 조 씨는 “또다시 그런 병에 걸린다는 게 그때는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진통제로 버티면서 학업을 이어온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 씨는 지난해 12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합격했다. 현재 조 씨는 양쪽 다리 모두 수술을 통해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용준 씨가 투병 생활 당시 매일 적었다는 감사일기 중 일부.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가 풀려 감사한다” “동생과 함께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등 내용이 적혀 있다. 조용준 씨 제공

10대 때부터 불운에 불운이 겹쳤지만 조 씨는 매일 감사일기를 쓰며 희망을 키웠다고 했다. 그가 2019년부터 써온 감사일기에는 “어제는 걸을 수 없었는데, 오늘은 걸을 수 있어 감사드린다”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가 풀려 감사한다” 등이 적혀 있었다. 조 씨는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다”며 웃었다.

조 씨가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인의 도움도 있었다. 조 씨가 치료받았던 신촌세브란스병원의 한 전공의는 매주 원격 수업으로 수학 과외를 해줬다. 다리가 불편했던 그를 위해 매일 두 명의 친구가 돌아가면서 등굣길 가방을 들어주고 계단에서 부축해줬다. 조 씨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과거의 투병 시간을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픈 이후 세계관이 바뀌었는지, 웬만한 일에는 끄떡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게 됐다”며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들과 웃으면서 보내는 모든 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 씨는 그동안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것으로 두 번째 삶을 보낼 계획이다. 그는 “제가 항암제 부작용을 많이 겪었기 때문인지 생명과학을 전공해서 꼭 부작용 없는 항암제를 개발하고 싶다”며 “치료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 두 번째 삶의 목표”라고 말했다.

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