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 올해 예산안 또다시 ‘하원 패싱’

극좌 ‘불신임안’… 부결 관측

프랑스 정부가 야당의 반발에 발목 잡힌 올해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또다시 하원 표결을 건너뛰는 헌법 조항을 발동했다. 정부의 의회 패싱에 반발한 극좌정당이 재차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하면서 정치권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일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국가 재정법안과 사회보장 재정법안 등 2025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해 열린 하원 본회의장에 출석해 정부가 책임을 지고 헌법 조항을 발동해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헌법 제49조3항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국무회의 승인을 받은 법안을 총리의 책임 아래 의회 투표 없이 통과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날 바이루 총리는 “어떤 나라도 예산 없이 살 수 없다”며 “프랑스가 2월이 됐는데도 예산이 없는 건 5공화국 역사상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예산안이 완벽하진 않지만 “균형 잡힌 예산”이라며 “프랑스가 예산을 갖게 될지는 여러분 손에 달려 있다”고 야권의 협조를 호소했다.

프랑스는 아직 2025년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2024년도 예산안에 기초한 임시 예산으로 버티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가 예산안 통과를 위해 의회 패싱을 감행했지만, 반발한 야당이 62년 만에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켜 같은 달 내각 전체가 해산하면서 예산안 처리도 무산됐다. 후임 총리로 임명된 바이루 총리는 상·하원과 협의를 거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한 재정 적자를 올해 5.4%로 낮추기 위해 정부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대기업·부자 증세 등을 통해 세수를 추가 확보하는 내용의 새 예산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날 극좌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는 정부가 교육·건강·생태 분야에서 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다,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았다며 즉각 정부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정부 불신임안은 오는 5일 표결에 부쳐진다. 불신임안이 가결되려면 하원 전체 577석 중 과반인 289표가 찬성해야 한다. 하지만 중도 좌파 사회당(66석)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로 당론을 정하면서 부결 가능성이 커졌다. 사회당을 제외한 여타 좌파정당과 극우 국민연합(RN) 측이 합세해도 절반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 불신임안이 부결되면 바이루 정부의 예산안은 상원으로 넘어가 상원 동의 절차를 밟게 된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