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주사 한 방… 살은 빠졌지만 삶은 허기져 갔다[북리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매직필
요한 하리 지음│이지연 옮김│어크로스

‘도둑맞은 집중력’ 쓴 요한 하리
비만 치료제로 체중 감량할 때
‘배고픔’ 탐구하며 새 시각 제시

“식욕은 삶에 즐거움 주는 감각
억제하기보다 건강하게 돌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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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주사를 맞기만 하면 식욕이 사라진다. 체중 감량을 위해 극단적인 식단 조절이나 힘든 운동을 할 필요도 없다. 이 간편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오젬픽은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효과를 입증했고, 국내에서도 출시 직후 수량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 이제 비만은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운 신체 조건이 아니라, 약을 통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기적의 약’이라 부르는 비만 치료제는 단순한 감량을 넘어 ‘현대인의 몸과 욕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의 이번 신간은 비만 치료제의 효과와 부작용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전작에서 집중력에 관한 탐구를 위해 직접 ‘디지털 디톡스’ 여행을 떠났던 저자는 이번에도 스스로 오젬픽을 투약하며 체험한 변화를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식욕’과 ‘배고픔’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저자는 체중이 10㎏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오젬픽을 처방받았고, 그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배고픔이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떠도 허기지지 않았고, 매일 먹던 샌드위치도 서너 입 먹고 나면 배가 부른 느낌이 들었다. 음식이 지나치게 짜고 기름지게 느껴졌고, 식사를 마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처음에는 감량 효과에 기뻤지만, 곧 예상치 못한 감각이 찾아왔다. 배고픔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라, ‘하루를 구성하는 중요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매직필’의 저자 요한 하리는 신종 비만 치료제인 오젬픽을 투약하며, 현대사회의 비만 문제를 파헤친다. 사진은 저자의 투약 전과 후의 모습. 어크로스 제공

이 변화는 일반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우리가 식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된다. 배고픔은 그저 칼로리를 섭취하기 위한 신체적 반응이 아니다. 식욕은 우리에게 감각적인 즐거움과 심리적인 만족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삶의 요소다. 책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의 여성 31%, 남성 19%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분이 나아지기 위해 ‘위안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비만 치료제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과정을 단순히 ‘억제해야 할 것’으로 규정한다.

다만 본능이라는 이유로 안주할 수는 없다. 비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점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에서는 매년 11만2000명이 비만으로 인해 사망하며, 이는 살인, 자살, 총기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비만은 흔한 문제가 아니었다. 1960년대 미국 성인의 평균 체중은 현재보다 10㎏ 이상 가벼웠다. 현재 미국인의 70%는 과체중이거나 비만 상태다. 영국 역시 1980년대에는 남성의 6%만이 비만이었지만, 2018년에는 그 비율이 27%까지 증가했다.

비만을 유발하는 환경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비만 치료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1980년대 이후 비만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데 기여한 초가공식품은 우리의 호르몬 시스템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맛과 질감을 가지고 있으며, 덜 씹고 쉽게 삼킬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는 포만감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과식을 유도한다. 우리는 ‘포만감을 훼손시키는 음식’을 먹어왔고 이제는 ‘포만감을 되찾아줄 약’을 원한다.

책은 비만 치료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비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의 방식 자체를 돌아본다. 지난 40년간 배고픔에 관한 연구를 선도해온 마이클 로 필라델피아 드렉셀대 교수는 저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환경이 원인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해결책을 점점 더 의학적으로 찾으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저자가 주목한 곳이 일본이다. 일본의 비만율은 4.5%로, 미국(42.5%)과 비교하면 극단적으로 낮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일본의 식습관에서 찾는다. 일본식 식단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며, 여러 음식을 한번에 입속에서 섞어 먹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 원래부터 이러한 식문화를 가졌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일본의 식사는 단조로웠고, 기대수명도 낮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부는 체계적으로 국민의 식생활을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오늘날의 일본식 건강 식문화로 이어졌다.

지난 50년간 반복된 낯익은 패턴이 하나 있다. 새로운 다이어트 약이 등장하면 모두가 열광하고, 몇 년 후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견되며, 결국 사용이 금지되는 현상이 반복됐다. 현재 위고비와 오젬픽은 기존의 다이어트 약과는 다르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약들이 장기적으로 우리의 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적의 약’의 등장과 퇴장을 보게 될까. 그 이전에 이번에야말로 과식을 유도하곤 이내 식욕을 억제하는 약을 권하는 사회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2032년 다수의 비만 치료제 특허가 만료되며 40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복제약이 생산되면 더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 사회가 국민의 식생활과 식문화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404쪽, 1만98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