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꼭 벗어나야 하는 걸까… 쇼펜하우어·니체 철학 비교해보니[북리뷰]

■ 쇼펜하우어가 묻고 니체가 답하다
크리스토퍼 재너웨이 지음│이시은 옮김│21세기북스

‘고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심신의 괴로움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꼭 그렇기만 할까. 철학은 그 이상의 의미를 알려준다. “삶은 고통”이라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고통’에는 아득한 의미가 담겨 있다. 쇼펜하우어 철학을 깊이 연구했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생각은 달랐다.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며 고통의 유익한 면을 부각했다. 철학자는 바꿔 만든 말 한마디로 독자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철학은 어렵고 무섭다.

책은 ‘쇼펜하우어의 고통’과 ‘니체의 고통’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것이다. 고통뿐 아니라 의지, 욕망, 예술 등 갖가지 말들에 대한 두 철학의 차이점을 다룬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저자는 어렵지 않되 깊이감 있는 해설을 담아냈다. 유독 한국에서 더 반가운 면도 있다. 열풍으로 보일 만큼 서점가에서 관련 출판물의 판매량이 눈에 띄는 두 철학자를 매칭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 줄 읽기’식의 독서가 유행한 데서 찜찜한 느낌을 받은 독자에게 특히 제격이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접점을 짚어내며 양쪽을 소통시킨다. 14개 장을 두 철학자에게 절반씩 할애하며 양적 균형까지 고려한 점도 눈에 띈다. 어느 한쪽에 쏠리지 않는 균형 독서를 하도록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독일뿐 아니라 세계 철학사에서 어떤 맥락과 지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다. 학술서가 아니라 ‘에세이’라고 밝힌 원제목대로, 일반 독자층을 위한 책이다.

쇼펜하우어가 고통으로 삶을 정의한 것은 철학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는 이상향만 찾고 있던 시절 철학을 했다. 고통을 초래하고 있는 눈앞의 인간을 겨냥한 그의 결론은 금욕이었다. 자기중심·이기주의 등 욕망으로 꽉 찬 세상에 절제를 요구했다. 반면 니체는 그 욕망에서 고통을 넘어설 힘을 봤다. 삶에 있어 고통은 그림자와도 같다. 고통을 벗어나야 한다는 관점 자체에 대한 반박이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문장은 고통 극복의 힘을 인간 스스로 찾자는 의미다. 욕망은 그 원천으로 다시 해석된다.

저자의 요지는 두 철학이 서로를 보완한다는 데 있다. 니체에게 고통 해결을 과제로 부여한 것은 쇼펜하우어 철학이었다. 쇼펜하우어만 단편적으로 접하고 염세에 빠지는 것도 곤란하지만, 니체만 보고 그 정반대로 날뛰는 것도 주변을 부담스럽게 한다. 468쪽, 2만4000원.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