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인터넷 바다에 들러붙은 따개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분지 구조를 쌓아 올린 송예환 작가의 ‘따개비들(The Barnacles)’. 높이가 4m에 달하는 작품은 21세기 현대인들을 외부 조류에 의존하는 따개비에 비유한다. 과연 인류는 디지털 현존을 결정하는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지갤러리 제공

■ ‘인터넷 따개비들’ 展 송예환

송은미술대상 본선 등 통해 주목
웹디자이너 일한 경험 바탕으로
인터넷알고리즘 문제점 등 인식

질낮은 마분지 구조물처럼 쌓아
스크린 더듬는 손가락 영상투사
디지털에 잠식당한 세태 꼬집어

터치스크린을 더듬는 자신의 손가락을 의식해 본 적 있는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눈동자가 얼마나 분주한지, 입은 다무는지 벌리는지….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동작들. 동시에 ‘디지털 세계’가 손가락에서 만들어졌다가 부서지고, 눈동자에 맺혔다가 사라진다. 서울 청담동 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송예환(30) 작가의 개인전 ‘인터넷 따개비들’은 이러한 시대상을 흥미로운 형식으로 보여준다. 마분지를 정교하게 쌓아 올려 군집을 이룬 따개비를 형상화하고, 입을 빠져나온 단어들이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사라지는 장면도 연출된다. 또 작가가 직접 알고리즘을 따라 정보를 흡수하며 인터넷을 서핑하는 인물을 연기하기도 한다.

“인터넷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 양상에 관심이 있었어요. 알고리즘을 통해 의도적으로 구성된 군집 속에서 개인이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세상을 이해하는지, 그것이 세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에 거주 중인 송 작가는 최근 문화일보와 이메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작가는 스마트폰을 장난감처럼, 그리고 벗 삼아 자랐다. 그런 세대가 디지털에 잠식당한 세태를 맹렬하게 꼬집으니, 더욱 눈길을 끈다. 여기엔 웹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 그는 “사용자 경험을 유도하는 UX/UI 디자인을 하면서 인터넷이 가진 여러 문제점, 특히 중독성을 조장하는 알고리즘과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문제를 직면하게 됐다”면서 “이 문제를 다루고 논의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식이 작가가 돼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송예환 작가. 작가 제공

송 작가는 지난해 송은미술대상 본선에 참여하고, 오는 4월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미술계의 주목받는 신진이다. 또한 오는 8일 뉴욕에서도 개인전을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마분지 조립 설치물 2개와 영상 작품 단 3점만을 선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역량과 존재감,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전시 제목에도 차용된 작품 ‘따개비들’은 언뜻 놀이터의 정글짐을 연상케 하는데, 그 일부는 4m에 달하는 갤러리 천장에까지 마분지를 규칙적으로 쌓아 올렸다. 그런데 마분지란 어떤가. 누런빛의 질 낮은 종이. 물이나 불에 약해 일시성, 일회성에 가까운 소재다. 작가는 이 특성이 인터넷 환경과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또한 반복적인 모듈 구조는 “인터넷 구조를 시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설치 작품 ‘회오리’는 거대한 스타디움이나 광장의 축소판이다. 마분지 조각 위에는 프로젝션에서 쏜 이미지와 영상이 정확하게 꽂힌다. 가장 위 조각 속 사람은 무언가를 말하지만, 아래 조각에선 그 말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마지막 조각에선 완전히 증발한다. 즉 무수히 많은 말들이 넘치는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무척 시끄럽지만 정작 서로 간의 대화, 진정한 소통은 없다는 걸 묘사한 것이다.

불안할 정도로 빠르게 흐르는 영상과 촘촘한 모듈을 응시하다 보면 어느새 수많은 날, 수만 장의 마분지 조각을 수행하듯 맞추고 있는 작가를 상상하게 된다. 작품의 ‘말 걸기’에 응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전시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동적 손놀림이 아닌 이토록 느리고 깊은 대화라고 일러주는 듯하다. 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고의 전환을 경험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더할 나위 없이 그에 부합한다.

벽에 투사한 영상 작품 ‘의심하는 서퍼들’은 직접 자신을 드러낸 송 작가를 보는 묘미가 있다. 그는 넋이 나간 듯 무언가에 집중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데, 그게 마치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사람 같다. 점점 더 과도하게 편리해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오히려 불안해지고 있는 이 시대 인터넷 사용자들의 내면이 바로 그것 아닐까. 전시를 기획한 장은하 큐레이터는 송예환의 설치 작품들은 “환원 불가능한 인간의 본질이 남아 있음을 상기시킨다”고 평했다. 결국 남은 질문이란 이것. ‘우리를 지탱하고 동시에 제약하는 시스템들과의 불가피한 얽힘을 인정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전시는 오는 15일까지. 관람은 무료.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