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상황 국정공백 메운 ‘임시 대통령’… 스타일은 6人6色[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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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역대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한 지 10일로 45일이 흘렀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민주화 이후 역대 세 번째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되는 ‘대행의 대행’이란 국가 비운의 체제가 두 달째 접어든 것이다. 헌법 제71조에는 대통령 궐위(闕位) 또는 사고 시 국무총리 등이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대통령의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정국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통령의 수많은 권한 중에서도 국군통수권, 장관 임명, 정상회담, 법률안 거부권 및 공포권, 사면·감형·복권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를 두고 권한대행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과 권한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반론이 충돌하고 있다. 권한대행이 행정부를 통할하는 실권자는 분명하지만,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과 달리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당성을 갖춘 수반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회의 견제도 상당하다.

역대 권한대행의 스타일은 그 인물이 누구인지, 정치적으로 직면한 상황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판이하게 갈렸다. 권력 행사를 자제하는 ‘절제형’과 적극 행사하는 ‘적극형’, 사안에 따라 판단하는 ‘절충형’과 ‘실리형’이 대표적이다.

◇‘이승만 하야’ 첫 권한대행 체제, 박정희는 유일한 ‘제왕적 권한대행’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은 역대 11차례 있었다. 민주화 이전 역사에선 대통령의 사망이나, 군사 쿠데타, 하야로 인한 비상 상황일 때 등장했기에 실권은 크지 않은 ‘허수아비’에 가까웠다. 헌정 사상 첫 번째 권한대행은 허정 전 외교부 장관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한 뒤여서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두 번째 권한대행은 곽상훈 전 민의원 의장이, 세 번째 대행은 허 전 장관이 다시 맡았다. 네 번째는 백낙준 전 참의원(국회 상원 격) 의장으로 닷새간 권한대행을 수행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대 다섯 번째 권한대행이다. 역사상 가장 길게 재임했고, 제왕적 권한대행이었다고 평가된다.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선출돼 국정 전반을 장악했고, 이듬해 윤보선 대통령이 사임하자 21개월간 대행직을 수행했다. 1979년 10·26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여섯 번째 권한대행직을 맡았고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사 쿠데타로 박충훈 전 국무총리 서리가 민주화 이전 마지막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민주화 이후 세 차례 탄핵…고건 ‘절제’·황교안 ‘적극’·한덕수 ‘절충’

민주화 이후에는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총 3차례 가동됐다. 진보 정권에서 한 번, 보수 정권에서 두 번이다. 노무현·박근혜·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에 따른 것이었다. 첫 권한대행은 고건 전 총리다. 그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후 63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며 로키(low-key)로 일관하는 등 절제된 권한을 행사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 기각으로 인한 복귀 가능성이 컸던 만큼 임시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기조였다. 고 전 총리는 내각 개편 등 인사권을 행사하거나 사면권 행사, 정상 외교 등 대부분의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당시 국회를 통과한 사면법 개정안과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치법에 대해선 위헌적 법안 등을 이유로 2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반면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권한대행을 맡은 황교안 전 총리는 147일간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황 전 총리는 집무실 책상의 명패를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라고 적힌 자개 명패로 바꾸고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새긴 손목시계를 만들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황 전 총리는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서도 마사회장 등 당시 임기가 끝난 주요 공공기관장 인사까지 단행해 국회와 크게 마찰을 빚었다. 그는 민생 현장도 수차례 방문하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대통령급 의전을 받아 ‘황제 의전’이란 비판도 일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권한대행이 두 명이나 배출됐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해 12월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첫 권한대행직을 수행했다. 정통 관료 출신인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 행사에 절제하되, 야당의 일방적 독주에는 제동을 거는 ‘절충적 권한’을 행사했다. 국정 운영 방향은 윤 정부의 기존 정책 방향을 계승하고, 사면권과 인사 등 대통령 고유권한은 행사를 자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대 야당의 무리한 입법 독주를 이유로 대통령 고유 권한인 거부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한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사용한 게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절차와 연관된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을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임명 보류하며 야당과 충돌했고, 권한대행직 수행 13일 만에 탄핵 소추돼 직무가 정지됐다. 권한대행이 탄핵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崔 민생 앞세운 ‘실리적 권한행사’…野 탄핵 위협에 여전히 위기

최 권한대행은 한 총리가 탄핵되자, 역대 11번째로 권한대행직을 수행하게 됐다. 최 권한대행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직을 동시 수행해야 하는 현실과 야권의 탄핵 위협으로 인해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국가적 아노미 사태를 지난 39년간 기재부 관료 경험만 해온 ‘정치 문외한’이 수습할 수 있겠느냐는 불신이 정치권과 관가 내부에서 컸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 총리마저 탄핵됐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과 같았다”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27일 대행직을 시작한 후 여러 실리적인 권한 행사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나흘 만인 같은 해 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3명 중 2명(조한창·정계선)을 전격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에 대해선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임명 보류를 결정했다. 당시 한 총리가 여야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이유로 헌재 재판관 3명 임명을 모두 거부했다가 야당에 의해 탄핵 소추되자 양쪽의 입장을 일부 반영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재판관 임명에 반대한 여권에선 ‘윤 정부의 배신자’라는 비판이, 전원 임명을 요구한 야권에선 ‘월권’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연쇄 탄핵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면 한 총리처럼 탄핵됐을 것이고, 3명 모두를 임명했다면 탄핵에 힘을 싣는다는 이유로 정권 내부 붕괴가 불가피했을 것”이라며 “유일한 활로였다”고 말했다.

기재부 안팎에선 최 권한대행이 ‘민생’과 ‘경제’를 정무적 판단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은 것이 결과적으로 정치 혼란을 최소화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민생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활용해 야당 압박을 최소화하는 전략적 조치라는 것이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달 21일에도 야권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동시에 야권이 요구해온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과 관련해선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여야가 정략적 이해관계로 인해 보류해온 추경을 ‘민생 경제 회복’ 차원에서 새롭게 제시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야당의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고, 정부도 경기 회복을 위해 추경이 필요한 시점에서 나온 결단”이라고 했다. 최 권한대행은 윤 정부 기조를 계승하면서, 의료개혁 등 일부 정책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일임하는 ‘분권형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김규태 기자 kgt9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