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24분
애니 제이콥슨 지음│강동혁 옮김│문학동네
北에서 美 본토 도달 24분
美, 보복결정까지 6분 걸려
러 개입하면 인류 멸망 서막
사실상 방어할 수단 없어
美 탐사보도 기자가 말하는
핵 발사 후 ‘가상 시나리오’
어느 날 아침, 미국 국방부의 한 관제실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인공위성이 감지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 전 세계를 날려버릴 핵전쟁의 시작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에게 보고가 들어가고, 대응 회의가 열린다. 상황을 파악하고, 적국의 동향을 분석하고, 반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미 대통령이 사용할 핵무기를 고르고 타격해야 하는 표적지를 결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단 6분이다.
이것은 할리우드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미국의 탐사 보도 전문 기자가 철저한 취재와 실제 군사 전략을 바탕으로 한 가상의 시나리오 ‘24분’의 이야기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워싱턴 DC를 향해 발사한다는 허구의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미국 대통령 자문 위원과 전 국방부 장관,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개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만큼 지극히 현실적이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현재 미국의 시스템 아래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저자 애니 제이콥슨이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 본토에 도달하기 전 24분의 시간 동안 미국의 대응은 숨 가쁘게 이뤄진다. 냉전 시대부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경보 즉시 발사 정책’에 따라 미국은 물리적으로 핵 타격을 받기 전에 상대국을 향해 핵무기를 발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통령의 비상 가방, 이른바 ‘풋볼’이 등장한다. 기밀 해제된 서류인 ‘닉슨 행정부를 위한 SIOP 보고서’에 따르면 ‘풋볼’에는 총 세 가지 정보가 존재한다. 사용할 핵무기, 타격할 표적지, 그 결과로 추산되는 사상자의 수. 대통령은 6분 안에 이 세 가지를 확인하고 적게는 민간인 수백만 명, 많게는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는 핵 보복을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북한으로 쏘아 올린 82기의 핵미사일은 본격적인 핵전쟁의 서막을 알린다.
미국의 반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오인한 러시아가 가담하며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진다. 대피 중이던 미국 대통령이 핵폭발과 함께 좌초돼 연락이 닿지 않자 러시아 대통령이 나토를 비롯해 유럽의 적대적인 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핵 공격을 명령한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43분이다. 그렇게 모든 명령이 내려지고 나면 남는 것은 핵 버튼을 누른 대가뿐이다. 북한의 미사일이 워싱턴 DC에 떨어지고 사방 5㎞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짓뭉갠다. 실제로 ICBM에 탑재되는 1Mt(메가톤)급 핵탄두는 TNT 폭탄 100만t과 같은 위력을 갖는데 그 불덩어리는 정오의 태양보다 1000배 더 밝다. 폭파 순간에는 이미 100만에서 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즉사하고 이후 낙진 등으로 방사선 피폭 피해자에게도 “불쾌한 죽음의 방식”만이 남는다. 러시아가 5Mt의 파괴력을 지닌 사르마트 ICBM을 포함해 1000기 이상의 핵무기를 가동하면 인류의 문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핵전쟁 속 한반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오산 공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서울 중심부를 향해 북한이 쏜 1만기 이상의 포탄과 240㎜ 구경 로켓이 날아들게 되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와 같은 방어체계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군사 역사학자 리드 커비에 따르면 북한이 생화학 무기 공격을 감행하면 서울 인구의 25% 이상이 죽거나 다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미국은 강력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적의 핵 공격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미사일 방어국은 다가오는 미사일을 상공에서 격추하는 임무를 맡은 조직인데 44기의 요격 미사일을 통해 북한의 핵탄두를 타격하도록 설계됐다. 이것이 공격용 ICBM을 격추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이런 행위는 미사일 방어국 대변인에 따르면 “총알로 총알을 쏘아 맞히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어렵다.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이 미사일의 초기 시험 요격은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미국이 핵 타격에 대비해 만들어 둔 방패는 이것이 전부다. 핵전쟁에서 ‘방어’라는 개념은 이토록 무력하다. 핵무기는 공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가 먼저 쏘는가’의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 끔찍한 지옥도를 통해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핵전쟁을 단순한 정치적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자동화된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핵전쟁의 결정권을 가진 소수의 정치 지도자들조차 이 시스템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쫓기듯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핵무기는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된다. 오늘날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여전히 1770기에 달하고 전체 탄두의 개수는 5000기를 넘는다. 러시아 또한 1674기의 핵무기를 비치하고 대다수가 당장에라도 발사할 수 있는 상태다.
책은 탄탄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훌륭한 국제정치서인 동시에 핵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을 1분 단위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가상역사 소설이기도 하다. ‘듄’으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는 지난해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도널드 트럼프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아닌 빌뇌브의 손에서만 제작되길 바란다. 488쪽, 2만2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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