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하고 해뜰날”에 칙칙했던 분위기 ‘쨍’… 희망을 움틔우던 그 노래[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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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송대관 ‘해뜰날’

친구는 역시 옛 친구. 예전 광고문구가 입술에 착착 붙으니 나도 옛날 사람 맞긴 맞는 모양이다. 옛 친구들은 한 얘기 또 해도 ‘인제 그만 좀 해’ 타박하지 않아서 좋다. 전역한 지 수십 년 지났는데 거기선 아직도 군대 얘기가 환영받는다.

일과를 마쳐도 신병에겐 또 다른 훈련이 기다린다. 지금과는 형편이 다른 시절임을 감안하고 듣기 바란다. 사격 개시 구호(노래 일발 장전)에 따라 신병들은 무반주로 메들리를 이어갔다. 상황 파악이 늦은 병사가 어디나 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나는 산울림의 ‘한밤에’를 호소력 짙게 뿜어냈다. ‘누구나 한번은 그래 그리워 몸부림칠 거야 꿈속의 향기를 맡고 일어나 허무해할 거야’ 눈을 떠보니 대원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막사에 처연했다. ‘이 분위기 어쩔 거야’ 내무반장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런 노래도 있냐’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예를 갖춘 질문이었다. 만약에 ‘그것도 노래냐’ 물었다면 나에게도 산울림에게도(알리진 않았지만) 순연한 기억으로 남진 못하리라.

사태 수습을 위해 쨍하고 나타난 지원군이 있었다. 세상 근심 다 조준해서 날려버릴 표정으로 씩씩하게 노래의 포문을 열었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2절은 반주도 지휘도 필요 없는 아카펠라 합창이었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군대를 일거에 부흥회로 만든 병사는 앙코르까지 받았다.

‘세월이 약이겠지요 당신의 슬픔을 괴롭다 하지 말고 서럽다 울지를 마오’(송대관 ‘세월이 약이겠지요’) 짐 싸둔 갈참(제대 앞둔 병장)이 아빠 미소로 묻는다. ‘고향이 남쪽이랬지’(나중에 송대관이 발표한 노래 제목과 동일) 취침 전에 내가 물었다. ‘너 고향 그쪽 아니잖아?’ 참 순진하기도 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툭 던지고 그는 담요를 뒤집어쓴다. ‘노래할 땐 다 같은 고향 아닌가 뭐’ 그 후에도 그는 군대 생활 잘한 걸로 칭송이 자자했다.

50년 전(1975) 음악동네 가수왕은 송대관(1946∼2025)이었다. 신비주의 잣대로 그를 평가하자면 내가 매긴 점수는 10점 만점에 2점이다. 연예계에서 찾기 드물 정도로 서민적 풍모를 지닌 분이었다.

일생을 셋으로 나눠 본다면 중간을 뺀 나머지 부분은 그에게 ‘힘겨운 나의 인생’에 해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대 안팎에서 풀 죽거나 기죽은 모습을 보인 적은 드물다. 아마도 그분 방식의 유머였을 적당히 밉지 않은 허세(?)를 볼 때마다 옛날 잡지 이름 하나가 떠오르곤 했다. 그 제호가 ‘명랑’이다. 밝고 환하다는 뜻이다.

열흘 전(2월 7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것이지 우리를 떠난 건 아니다. 문득 청마 유치환의 시(‘바위’) 첫 구절이 떠오른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가수는 죽어서 노래가 된다. 어디선가 부르면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난다. 예술이 그렇다. 읽지 않는 시집은 죽은 자의 집이지만 시집을 펼치면 시인도 잠을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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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체가 강렬한 유치환의 시가 또 있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누구에게나 묻고 싶은 흑역사가 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흑역사는 흙역사다. 절망으로 기울 때마다 흙 속에서 희망을 움 틔우는 노래. 송대관의 노래는 대다수가 생활밀착형이면서 교훈적이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같아도 누구나 ‘예정된 시간표대로’(‘차표 한 장’) 떠나는 게 인생 열차다. 다 지나간다. 세상은 냉정해도 세월은 공정하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