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재출력… 소모용 인간의 로맨스 그린 ‘봉테일 SF’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이 그간 연출한 작품 중 최다 제작비(약 1억1800만 달러·1702억7400만 원)가 들어간 대작이다. 오는 28일 한국 개봉에 앞서 17일 언론에 먼저 공개됐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영화 ‘미키17’ 28일 개봉

17번째 미키 사망한 걸로 착각
18번째 출력… 두 미키의 모험
공존의 길 찾으며 체제에 도전
연인과 로맨스에 추동력 얻어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의 첫 우주 진출작으로 이목을 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과학소설(SF) 영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 이 작품의 우주 공간은 봉 감독만의 스타일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봉준호식 로맨스’가 중심에 있는 영화다.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들고나온 신작이자, 장편 기준 8편째 만에야 봉 감독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 제목은 17번째 미키(로버트 패틴슨)라는 뜻이다. 앞서 16명의 미키가 죽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직업은 ‘익스펜더블’(expendable·소모용). 2054년 우주를 배경 삼은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는 죽음도 직업이다. 미키의 핵심 업무는 미개척 행성의 위험 지역에 대한 탐사, 미확인 바이러스의 생체 실험 등이다. 4대 보험은커녕 산업재해조차 적용받지 못한다. 미키가 일하다 죽으면 20시간 이내 그의 말끔한 신체가 그대로 ‘출력’(바이오 프린트)된다. 이 출력물에다 미키의 기억·성격 데이터 삽입까지 마치면, 그가 바로 미키다. 이런 데서 무슨 로맨스가 가능하겠나 싶다. 그렇지만 봉 감독은 희극을 비극처럼, 비극을 희극처럼 다루는 데에 능숙하다.

“그녀는 모든 나를 사랑한다고!”

나샤(나오미 애키)의 온전한 사랑에 대해 미키는 감동을 느낀다. 17번째 미키에 이르기까지, 나샤는 그 모든 미키를 한결같이 대한다. 미키로서는 ‘모든 나’(Every Me)라는 표현보다 더 정확한 말을 찾기 어렵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티모(스티븐 연)는 미키에게 “죽는 건 어떤 기분이냐”고 얄궂은 질문을 던진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18번째 미키가 나타났다고 해서 다를까. 17번째 미키가 사망했다고 착각한 연구진이 새 미키를 출력한 탓에 17·18번째 미키가 동시 존재하는 사고가 난다. 한쪽은 흐리멍덩한 얼굴을 한 반면, 다른 쪽은 그 성질에 불이 붙으면 주먹부터 나간다. 두 미키에 대한 다소 철학적 고민이 들 법도 하지만 영화는 그 틈을 주지 않는다. 범죄 예방을 위해 익스펜더블은 오로지 1명뿐이어야 하는 강제 규정을 깨는 경우 모두 극형에 처한다. 그런데 서로 살겠다고 싸우는 두 미키를 보는 나샤의 표정은 태연하다. 모든 미키를 사랑하니까 두 미키 모두와 연애를 하려고 덤벼든다.

137분의 러닝 타임 중 미키·나샤 로맨스의 비중은 크지 않다. 상당 부분이 이 영화 자체의 설정을 관객에게 풀어내는 데 할애돼 있고, 봉 감독이 그간 다뤄 왔던 자본주의 체제 비판과 사회 현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시간의 분량도 크다. 그런데도 이번 작품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봉 감독의 로맨스 연출이다. 개봉에 앞서 봉 감독이 “처음으로 로맨스 이야기를 다뤄 뿌듯하다”고 예고했던 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미키를 둘러싼 환경은 극도로 비인간적이다. 크레바스에 추락한 미키가 곧 죽을 상황인데 그 친구 티모(스티븐 연)는 구할 생각을 전혀 않는다. 오히려 “잘 죽고, 내일 봐”라고 작별 인사를 한다. 강력한 우주 방사선을 맞은 미키의 절단된 손목이 창밖에서 떠다녀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미키 본인조차 죽음에 권태롭다는 표정이다. 일말의 감정도 없어 보이는 비인간적 우주, 그 속에서 미키와 나샤의 아주 인간적인 연애 서사가 진행된다.

로맨스 영화답게 결말의 분위기도 봉 감독의 전작들과 확연히 다르다. ‘기생충’은 하층 계급끼리 서로 겨눈 칼끝이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상층을 찌른 결말이었다. ‘옥자’(2017)의 주인공은 싸움에서 물러나 시골로 돌아갔고, ‘설국열차’(2013)의 탈선은 혁명의 불가능성을 돌려 말하는 듯했다. 반면 미키는 동료와 공존하는 길을 가면서 체제에 대한 정면 승부를 거는데, 그 추동력이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기존에 익숙했던 SF 영화와도 다르다. SF 장르에서 흔한 장엄한 연출이나, 심장을 조이는 듯한 긴장감을 기대하는 관객은 실망할 수 있다. 봉준호식 SF 로맨스 영화라고 해야 맞는다. 18일 오전 8시 기준 ‘미키17’ 예매율은 22.9%로 1위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