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에르노·부커상 손더스… 서점에서 털어놓은 ‘고백들’[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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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애덤 바일스 지음
정혜윤 옮김│열린책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주인공 제시와 셀린이 재회하게 되는 곳.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이 되는 서점. 그곳은 파리 센강 좌안에 위치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다. 이 서점은 75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곁을 내어줬다. 낮에는 언제나 사람이 북적였고 어둠이 내리면 작가들의 이야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동안 3만 명이 넘는 작가들이 서점에서 마련한 숙소에 머물며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삶과 작품에서 비롯한 내밀한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줬다.

책에는 서점의 문학 디렉터인 저자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작가를 만나 직접 진행한 대담 중 가장 특별한 20편이 엄선됐다. 2022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와 2017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조지 손더스 등의 소설가부터 비평과 자기 고백을 넘나드는 독보적 논픽션 작가 올리비아 랭 등은 모두 서점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통해 통찰을 건넸다.

이 중 단연 눈에 띄는 부분은 소설가들의 소설론이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손더스는 소설을 만나는 순간에 대해 ‘성스러운 경험’이라며 ‘읽거나 듣거나 아름다운 창작물을 보면 아주 잠깐 우리의 눈이 열린다’고 말한다. ‘아주 잠깐 엿봤을지라도 그 진실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다’는 그의 말 속에서 책을 읽는 행위가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키르케’를 쓴 매들린 밀러는 소설에 대해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인물의 목소리를 발굴해내 신화를 창조적으로 다시 쓰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전미도서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소설가인 제스민 워드는 소설 속 인물을 창조할 때 ‘어떤 한 개인도 트라우마로 축소되지 않을 수 있도록 다면적으로 조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문학을 더 많이 읽고, 쓰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놓칠 수 없는 대담일 수밖에 없다.

작품을 넘어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통찰도 거침이 없다. 손더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집권 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마주하면서 ‘민주주의에 무감해져 있던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순간이었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곡의 시기는 지나갔으며 ‘그래, 어차피 이미 일어난 일이야’ 생각하곤 툴툴 털고 일어나자고 격려한다. 자전적 페미니즘 글쓰기의 대가인 아니 에르노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금기어가 됐을 정도’인 시대에 여성 혁명은커녕 후퇴가 일어난 듯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내 ‘미투’(Me Too) 운동을 예시로 들며 중요한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스무 편의 대담을 읽고 있자면 마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대담 현장 1열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회사’로만 생각됐던 ‘컴퍼니’에 다른 의미도 부여하게 된다. 쓰는 사람 뒤에는 편집자를 비롯해 수많은 동료가 함께하고 있으며 작가들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동료란 바로 나, 독자라는 사실이다. 384쪽, 1만98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