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성장률 전망 2.1→1.9→1.5% 하향… 내수 무너지고, 수출은 관세폭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금통위 금리 인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본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성장률 전망치 대폭하향

작년 5월 이후 전망치 계속 낮춰
일각선 ‘한국은행 잦은 변경’ 지적

소매판매 21년만에 최대폭 줄고
건설투자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자동차·의약품 등은 관세 타격
이창용 “재정정책과 공조 필요”

한국은행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한 번에 0.4%포인트나 낮춘 것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관세 정책이 예상보다 고강도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등 국내정치 불안으로 통상환경 변화 대응 등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 경제전망이라도 정확도를 높여 올바른 정책 수립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은의 경제전망 변경이 잦아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한은에 따르면, 한은은 지난해 11월 경제전망에서 미국이 올해 2분기부터 대(對)중국 관세 부과에 나서고 여타 무역적자 상위 국가에 대한 보편관세는 내년 1분기부터 부과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전망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정권 출범과 동시에 구체적인 관세 조치를 빠른 속도로 발표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구체적으로 전개되면서 한은 역시 이런 변화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전보다 크게 반영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25% 보편관세를 부과할 경우 반도체 수출은 1.01% 증가하지만, 자동차와 의약품 수출은 18.59%, 7.37%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아직 미국 관세 정책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지만, 수출은 연초부터 감소세로 돌아서며 향후 예상을 어둡게 하고 있다. 지난달 일 평균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7.7% 증가했으나, 2월(20일까지)에는 2.7% 감소하기도 했다.

내수 역시 고금리에 비상계엄 사태 여파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재화 소비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전년 대비 2.2% 감소하며 카드대란이 벌어진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특히, 건설투자는 지난해 2∼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며 내수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날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2.75%로 내린 것은 이 같은 경기 하방 리스크를 막아보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금통위는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 금리도 1.5%에서 1.25%로 인하했다. 금중대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실적에 따라 한은이 저금리로 은행에 자금을 공급해주는 방식의 신용정책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통화정책의 ‘실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재정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향후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낸 금통위원은 6명 중 2명에 불과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금리를 더 낮추게 되면 환율과 물가, 가계부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올해 1.5% 이상 성장하려면 재정정책과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도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년 만에 경제성장률이 다시 1%대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국의 잠재성장률도 기존 2.0%보다 낮아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은이 추정한 2024∼2025년 잠재성장률 2.0%는 이번보다 낙관적이었던 지난해 전망에 기반해 산출한 수치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대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저성장이 고착화될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경제가 구조적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은이 정확한 경제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최초 발표한 전망치(2.3%) 대비 0.8%포인트나 조정된 것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경제 환경의 변화를 고려해도 한은이 연간 성장률을 이렇게 크게 조정한 적은 많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3·4분기 성장률도 한은 전망치(0.5%) 대비 크게 낮은 0.1%로 집계된 바 있다.

김지현 기자 focu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