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도 우정도 40년… 작년 2인 시집 낸 우리는 영원한 ‘文靑’[자랑합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 ‘세상 읽기’ 동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 왼쪽부터 오태환, 원재길, 윤승천, 이승하, 박세현.

■ 자랑합니다 - 동인 ‘세상읽기’와 시인 윤승천 <하>

우리가 동인지를 준비하고 출간하던 바로 그 시절에 대학생 김종철과 이한열이 공권력에 의해 죽었다. 6·10항쟁은 정국을 난타한 성난 파도 같았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육성으로 1987년 6월 29일에 직선제 개헌과 민주헌법 제정을 약속하는 6·29선언을 발표했을 때 우리는 술집에서 만세를 불렀다.

동인들은 잠시 숨을 돌리기로 했다. 학생인 동인은 박사논문 혹은 석사논문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고, 직장생활을 하는 동인은 회사생활에 여념이 없었다. 원재길 동인은 번역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제3집 원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각자 자기 일로 동인지 발간에 제동이 걸렸다. 제3집 원고를 모으는데 노태우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상황이 많이 바뀌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5명 동인은 각자 개인시집 내기에 골몰, 동인은 그만 해체되고 말았다.

윤승천은 건강신문사를 인수하여 신문 발행과 건강 관련 책 출간에 매진하였다. 의학과 건강 관련 서적 외에 문학, 교양, 스포츠, 취미생활 관련 책들을 내느라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와중에도 시를 써 20여 년 만에 한 권의 시집을 내지만 창작 일선에서는 떠나 있게 된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2010년 무렵에 문학서적을 내는 자회사 Km을 설립한다. 킬로미터. 육상의 꽃인 마라톤은 42.195㎞를 달려야 하는데 숫자를 빼면 Km이 된다. 달리는 거다. 앞만 보고.

어느 날 윤승천은 이승하에게 연락한다. 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우리 출판사에서 내자고. 서로 안부를 묻고 밥은 종종 같이 먹었지만 책을 쓴 필자와 출판사 발행인과의 만남이 그 뒤로 다시 15년이 이어진다. 그간 이승하는 Km에서 시집 1권, 문학평론집 2권, 산문집 2권을 낸다.

지난해 가을에 윤승천은 이승하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가 등단한 지 40년이 되었고 우정을 다져온 지도 40년이 되지 않았소. 대한민국에 2인 시집은 거의 없는데 우리가 등단 4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2인 시집을 내는 게 어떻겠소?” “아, 좋지요. 형제 시집, 부부 문집은 있었지만 2인 시집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작년 12월 27일, ‘일출(日出)’이라는 시집을 냈다. 새해를 앞두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해돋이를 보겠다는 뜻에서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그대가 우리에게 남긴／슬픔과 상처와／쓰라린 고뇌와 긴 고통／어느 한 시절／그대로 하여 우리에게 남은／사무치는 생애까지도／끝내 지울 수 없는／그대와의 한 시절일지라도／오늘 이 동해의／깨끗한 아침에 서서／용서하라!／또 용서하라.’(윤승천 시 ‘일출’ 전문)

봄에 조촐한 출판기념회 겸 북 토크쇼를 해볼까 계획 중이다. 3명의 다른 동인도 모시고서. 1980년대 그 엄혹한 시절에 우리는 시가 좋아서 만났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시에 목을 매고 있는 영원한 문청이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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