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라는 망각[유희경의 시:선(詩: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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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휴식 같은 게 아니다./ 잠은 밤이라는 비존재로 가라앉는 것이고 밤이라는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어디에 닿기 위해 헤엄치지 않는다./ 잠든 사람은 헤엄친다./ 잠은 목적지 없는 밤의 여행이다.’

- 채호기 ‘더 작은 시작’(시집 ‘머리에 고가철도를 쓰고’)

한때 나는 참 잘 자는 사람이었다. 머리만 대면 잠이 들었고, 한 번 잠들면 아침 해가 밝아오기 전에는 깨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재능이었고, 신의 축복에 견줄 만한 행운이었다. 더는 그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흔 살 부근부터였던 것 같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이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 마니,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깨면 잔 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 그러다 말겠지 싶었던 불면이 하루이틀 반복되자 겁이 났다. 하루 서너 잔은 마셔대던 커피를 아침 한 잔으로 줄였다. 한결 나아졌지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지인들의 충고에 되도록 볕을 쬐려고 애썼고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횟수를 줄였다. 그런데도 잠은 쉽게 찾아오지 않고,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는가. 어느덧 불면과 풋잠에 익숙해져 갔다. 운이 좋아 ‘꿀잠’을 자게 되면 호들갑스러울 만큼 기뻐했다. 역시 없어 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거지. 씁쓸해하면서 나는 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스무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자주 잠을 설치셨다. 잠든 중에도 한숨을 쉬거나 끙끙 앓는 소리를 내셨다. 나는 안방에서 건너오는 그 소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이 저리 걱정이실까.

걱정은 끝이 없다. 실은 나의 수면 장애 또한 걱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닥친 어려움에 대한 걱정,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역설적으로 그래서 잠은 필요한 것이겠지. 잠시라도 망각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깜깜한 어둠 속에 머리를 대고 최선을 다해 잠들려 노력한다. 이내 찾아올 잠에 기꺼이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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