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달린 독일의 親성장 급선회[시평]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현지에서 지켜본 獨 총선 모습
지역구 선거는 진지하고 조용
정당 지지율 높일 정책에 주력

3년 만에 기민련은 제1당 복귀
중도좌파 사민당 급속히 추락
극우·극좌 약진으로 정국 불안

지난해 9월부터 베를린자유대에 방문학자로 와 있는 필자는 이곳에서 독일 총선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과 비교해 부럽기도 했고, 해결 난망인 문제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첫 느낌은, 선거운동이 무척 진지하면서도 조용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정당 지지율이 중요하다. 각 정당은 TV 토론과 언론 노출을 통한 정책 경쟁에 주력했다. 그래도 우리처럼 지역구 선거도 병행하기에 선거운동이 어느 정도는 떠들썩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정당 대표나 지역구 출마자의 사진과 핵심 공약 한두 줄만 써넣은 포스터를 가로등에 부착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주말에 파라솔 하나 갖다 놓고, 유권자들과 사탕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정도였다.

선거일도 지난 23일 일요일, 단 하루였다. 사전투표가 없는데도(우편투표는 가능) 투표율은 84%로 매우 높았다. 결과는 여론조사대로였다. 중도우파 기독교민주연합(CDU/CSU)이 득표율 28.5%로 승리했다. 현 집권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은 득표율 16.4%로 3위로 밀려났다. 반(反)이민 극우 정당인 대안당(AfD)이 지지율을 무려 10.4%포인트(P)나 끌어올리며 전국 득표율 20.8%의 2위 정당이 됐다. 4위는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했던 녹색당(11.6%)이었다. 한 가지 이변이라면, 분당의 여파로 5% 문턱을 넘지 못할 수 있다던 극좌 좌파당(Die Linke)이 8.8%의 득표율로 5위로 올라선 것이다. 분당해서 나간 BSW는 4.97%로 6위.

이번 총선에서 승패를 결정지은 이슈는, 이민자 문제와 경기 침체 그리고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생활고 문제였다. 기민련은 출입국 심사 부활과 불법 입국자 추방 등 전과 달리 강경한 이민정책을 내놨다. 또한, 급한 대로 가스발전소 50기를 짓고 탈원전 정책은 폐기해 에너지 가격을 낮춤으로써 산업 경쟁력 회복과 생활비 절감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규제 완화와 감세 같은 친시장적 정책을 통해 3년간 마이너스와 제로 성장에 허덕이고 있는 독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공약도 잊지 않았다.

기민련은 630석 중 208석을 얻었다. 그러나 정부 구성에 필요한 316석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총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기민련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차기 총리는 사민당(120석)과 연정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보수 계열로 2위를 한 대안당(152석)과의 연정은 독일 민주주의를 위해 불가함을 재확인했다. 그러자 알리스 바이델 대안당 당수는 이번에 연정에 참여하지 못하면, 다음 총선에서 1위를 해 주도적으로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델이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안당은 구동독 지역에서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렸다. 그리고 구서독 지역, 특히 기민련의 텃밭인 남부지역 대부분에서 2위로 올라섰다. 한편 좌파당은 동베를린을 포함해 구동독의 도시지역을 휩쓸었다. 그동안 기민련과 사민당은 좌우의 극단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좌파당과 대안당을 정부 구성에서 늘 배제해 왔다. 하지만 기민련과 사민당의 득표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기민련은 50대 이상, 사민당은 60대 이상에서 강세이고, 이번 총선에서 30·40대에서 가장 많은 지지는 대안당이 받았다. 그리고 20대는 좌파당을 가장 많이 지지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대안당과 좌파당을 제외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어려운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중도우파 기민련과 중도좌파 사민당의 연정이 처음은 아니다. 16년간 총리로 재임한 기민련의 앙겔라 메르켈도 2005∼2009년과 2013∼2021년에 두 차례 사민당과 함께 독일을 이끈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연정은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메르츠 총리 후보는 메르켈보다 훨씬 친(親)시장적이고, 친환경정책에 비판적이다. 포용주의적 난민정책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당내 우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만큼 사민당과 정책적 거리감이 상당하다. 이를 의식한 메르츠는 사민당이 생존하려면 우향우해야 한다며,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의 사민당으로 되돌아오길 주문하고 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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