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풍기는 ‘미키17’… 봉준호식 SF란 이런 것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키 17’.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기생충’(2019)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봉준호 감독이 6년 만에 돌아왔다. ‘기생충’ 이후 기획에 들어가 2021년 9월에야 시나리오를 탈고했다는 ‘미키 17’(28일 개봉)과 함께다.

지난 17일을 전후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언론 시사회가 진행됐고, 그 즉시 리뷰 기사가 쏟아졌다. 외신들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 것으로 보인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미키 17’에 100점 만점을 매기고 "노동 계급을 위한 SF(과학소설)"이자 "한 남자가 자신이 행복해져도 괜찮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이야기"라고 호평했다. 미국의 인디와이어는 "‘미키 17’이 ‘설국열차’와 ‘옥자’의 장점을 합친 작품"이라며 "봉 감독이 지금까지 내놓은 영어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반면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키 17’은 시각적으로 화려하지만 이후엔 이야기가 감정적으로 펼쳐지면서 힘이 빠진다"며 60점을 줬다. 미국의 버라이어티는 "안타깝게도 봉준호의 비전이 가장 잘 작동하는 영역의 영화는 아니다"라며 "조잡하고, 시끄러우며, 설교조로 흐른다"고 지적했다. 가장 낮은 점수를 준 영국 BBC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심각하게 실망스러운 영화"라고 평했다.

영화를 들여다보니 외신들의 극과 극 평가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버라이어티처럼 "설교조로 흐른다"는 대목은 여길 두고 말하는 것 같다. 갈등이 고조되는 후반부, 죽다 살아난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연인인 나샤(나오미 애키)가 폭력적인 독재자 마샬(마크 러팔로)을 향해 ‘그러면 안 된다’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외계 생명체인 ‘베이비 크리퍼’를 살리기 위해 마샬에게 대항하다가 붙잡힌 후 무엇이 정의인지, 왜 휴머니즘을 잃어서는 안 되는지를 격렬하게 내뱉는다. 하지만 좀 길다 싶다. 그리고 계급 불평등이나 반휴머니즘에 대한 묘사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통쾌하다’는 공감보다는, ‘계몽영화’ 같다는 아쉬움이 피어오른다. ‘기생충’에서 보였던 은근하면서도 충격적인 시퀀스가 없어서다.

봉 감독 특유의 유머도 약하다. 2시간 넘는 러닝타임 동안 특별히 지루함을 느끼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웃음이 터져 나오지도 않았다. ‘괴물’(2006)과 ‘설국열차’(2013), ‘기생충’을 보면서는 몇 번씩이나 ‘풉∼피식’ 웃었는데 이번엔 1∼2번 정도에 그쳤던 것 같다. ‘계몽조’의 대사가 블랙 코미디를 느낄 여유를 반감시켰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키 17’의 나샤(왼쪽)와 미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그러나 후반부에선 봉 감독의 저력이 드러난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오스카 4관왕의 엄청난 성과가 대충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미키 17’은 사실 SF라기보다는 로맨스 영화다. 사람이 소모품(expendable)으로 전락해 극한 실험실의 쥐처럼 사용되고, 그러다 죽으면 바로 똑같이 복제돼 재탄생하는 2054년 미지 행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기본 구도는 미키와 나샤의 러브 스토리다. 먼 미래의 시간과 미지의 우주공간을 빼놓고 보면, 미키와 나샤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춘남녀와 다를 게 없다. 소심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만 갈수록 변화하는 ‘평범남’ 미키와 남자보다 강인하지만 상대의 부족함을 감쌀 줄 아는 ‘배려녀’ 나샤는 서로를 이해하는 영혼의 콤비이자, 사랑의 동반자다. 인디펜던트가 "노동 계급을 위한 SF이자, 한 남자가 자신이 행복해져도 괜찮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이야기"라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키 17’.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그리고 후반부를 압도하는 괴생명체 ‘크리퍼’의 존재는 특별하고 신선하다. ‘괴물’의 괴이한 생명체와 ‘옥자’(2017)의 유전자 변형 슈퍼돼지를 합쳐 놓은 것 같은 크리퍼는 ‘봉 감독 스타일의 SF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 하나, 주인공 로버트 패틴슨을 비롯해 스티븐 연, 나오미 애키, 마크 러팔로 등 주요 출연배우들의 연기는 거의 흠잡을 데가 없다. 특히 패틴슨의 1인 2역은 관객을 놀라게 한다. 상반된 캐릭터를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벼운 보이스, 어깨를 늘어뜨린 채 잔뜩 기죽어 있는 지질함은 왠지 국내 배우 중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어쨌거나 이 영화엔 무려 1억2000만 달러(약 1718억 원)의 거액이 투입됐다. 웬만한 한국영화 10편을 만들고도 남을 돈이다.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 기준으로도 블록버스터급에 해당한다. 이 돈을 들여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그건 분명 봉 감독의 파워임에 틀림없다. 봉 감독의 뚝심과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김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