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와 식해[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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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한글박물관에 전시된 해주 특산 백자 단지를 보면 ‘시케단지’라는 한글이 선명하게 보인다. 청화를 그리던 화공은 그림 실력뿐만 아니라 한글 실력도 자랑하고 싶었을까? 단지의 용도는 쓰는 사람 마음인데 굳이 힘찬 필체로 글씨도 남겨놓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맞춤법에 맞게 쓴다면 ‘식혜(食醯)’일까 아니면 ‘식해(食해)’일까? 요즘 사람들의 발음에 따르면 ‘시케’는 이 둘 모두에 해당할 수 있으니 화공은 무심결에 백자의 그림과 함께 말소리의 변화에 대한 재미있는 화두를 던진 셈이다.

두 한자가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전자는 엿기름으로 밥알을 발효시켜 만드니 식초와 유사하고 한자도 그 뜻이다. 후자는 생선을 소금과 곡물로 발효시켜 만든 젓갈의 일종이고 한자도 역시 그 뜻이다. 자세히 봐야 한자가 구별되듯이 우리의 발음도 자세히 말하고 들어야 구별된다. 받침의 ‘ㄱ’이 뒤에 오는 ‘ㅎ’과 결합해 ‘ㅋ’이 되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문제는 모음이다.

오늘날의 표준발음법에서는 ‘계, 혜’를 ‘게, 헤’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현실 발음을 따른 것인데 이 단지의 한글 표기를 통해 과거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발음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한술 더 떠서 ‘에’와 ‘애’도 구별하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 요즘 사람들에게는 저 표기가 ‘식혜’인지 ‘식해’인지 알 수 없다.

식해는 동해안의 음식이니 황해도 해주에서 만든 이 단지는 식혜를 담기 위한 용도일 것이다. 민간에서는 식혜를 ‘단술’ 혹은 이것의 한자어인 ‘감주(甘酒)’라고 부르는데 이리 부르면 헷갈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식혜와 감주는 다른 음식이다. 지금은 황해도가 북한에 속해 있어 그곳 사람들은 북한 방언을 쓸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황해도는 경기도와 가깝고 말 또한 그렇다. ‘시케단지’는 그것을 증명해 준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