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고3때 이우환 전시 보고 충격… 처음으로 미대 갈 결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색면추상으로 주목받는 젊은 일본 작가 야마다 고헤이가 ‘보더라인’을 주제로 한 신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전시

■ 첫 한국 개인전 ‘보더라인’

기하학적 색면추상으로 주목
“경계속 빛깔의 상호작용 그려”

“‘보더라인(Borderline·경계)’이지만 ‘분절’은 아니에요. 이 ‘경계’는 다른 기억과 시간, 공간이 만나 소통과 연결을 이뤄내는 상태입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야마다 고헤이(28) 작가는 첫 한국 개인전 ‘보더라인’의 뜻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해외 전시만 벌써 두 번째. 갤러리 두 개 층에 신작 15점을 채워 넣은 야마다 작가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이른바 Z세대다. 일찌감치 일본 대형 갤러리 다카이시에 발탁되며 주목받은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그려온 묵직한 색면추상의 분위기를 풍겼다. “제 작품이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해요. 그 문맥 안에서 나아갈 방향을 또 고민해야겠지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선보이고 있는 야마다 고헤이의 신작. 캔버스에 오일, 80.4 x 130.8㎝, 2024.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제공

기하학적 색면추상을 추구하는 작가는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 위에서 ‘경계’를 탐구한다. 모든 것이 똑같은 크기로 보이는 스마트폰에 대한 반동인지, 작가는 실제 작품의 크기에 민감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5.5m에 달하는 갤러리의 층고를 충분히 활용한 높이 3m 대작부터 그 절반 크기, 다시 그 절반 크기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15점 모두 ‘무제’로 명명한 작가는 ‘경계’를 “상반된 둘 이상의 대상이 서로 맞닿는 물리적·관념적 공간”, 즉 ‘접경지대’로 규정했다. 그곳에서 저마다의 기하학적 형태가 “서로의 빛깔을 끌어당겨 혼합되거나, 대조적으로 밀어내며 상호 작용한다”며 경계에 내재한 소통과 매개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선보인 작품들의 색면 형태는 현대 도시의 선형적 풍경과 닮았다. 다소 경직된 듯하나, 볼수록 따스하다. 캔버스를 360도 돌려가며, 물감을 차곡히 쌓아 올려 생겨난 밀도, 그리고 깊은 색감 덕이다. 작가는 자연의 빛을 은유한 붉은색과 푸른색을 주조 색채로 사용했는데, 각각 땅과 바다의 빛깔을 반영한 것이다. 이 둘은 파편화된 문명사회에서 우리가 자주 ‘관조’하며, ‘숭고’를 느끼는 대상이다. 야마다 작가는 “어린 시절 도쿄의 집과 시골 할머니 댁을 오가며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야마다 고헤이 작가가 높이 3m에 달하는 신작 앞에 서 있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인 작가는 작업을 할 때마다 실물로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의 크기에 깊게 고민한다고 했다. 무제, 캔버스에 오일, 291.3 x 218.2㎝, 2024.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전반적으로 색채는 다소 무겁고 어둡다. 작가가 “자연에서 조금 빗겨나간 색”을 썼기 때문이다. 예컨대, 초록색은 그 강렬한 상징성을 탈피하기 위해 ‘에메랄드 그린’으로 표현하는 식. 작가는 “색은 하나의 욕망이어서, 그것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일부 작품에선 환한 레몬 빛이 시선을 잡아끈다. 이 또한 야마다 작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 그는 작업을 시작할 때 바탕색으로 레몬색을 칠하고, 그 위로 다양한 색면을 중첩하는데, 간혹 레몬색 부분을 덮지 않고 남긴다. 작가는 “고전 회화에서 두드러지는 ‘빛’을 색면추상에서 구현해 본 것”이라며 “레몬색이 구멍처럼 보여 몰입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보더라인’을 주제로 선보인 야마다 고헤이의 신작. 땅과 바다의 빛을 투영한 두 개의 은유적 색채를 주조로 한 작품은 경계가 만드는 소통과 연결을 상징한다. 작가는 레몬 컬러에서 시작해 캔버스를 360도 돌려가며 여러 컬러를 중첩하며 작업한다. 무제, 캔버스에 오일, 162.2 x 130.3㎝, 2024.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작품에 깃든 정서가 사색적이고 원숙하다. 이것이 또래 작가들에 비해 그가 빨리 인지도를 쌓은 비결이 아닐까. 그런데 작가는 “나를 키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미술 시장 ‘거품’”이라며 웃었다. 붓을 잡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세토우치 이우환 미술관에서 받은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며 “현대 미술을 처음 인식하고, 미대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든 것도 그때가 처음이다”라고 고백했다.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지만, 그때부터 준비해 다음 해 일본 명문 무사시노 미대에 입학했다. 이쯤 되니, 그가 결코 ‘거품’이 아님을 감지한다. “작품을 내놓을 땐 늘 걱정이 앞서요. 그저 ‘이 작가는 아직 젊잖아’하고 열린 마음으로 넉넉하게 감상해 주시기를…. (웃음)”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