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씨앗[유희경의 시:선(詩: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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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잤다. 일찍 일어났다. 혼자 듣는 빗소리는 크다. 누워서 빗소리를 듣다 비가 궁금하여 현관문을 열었다. 샘 물소리가 청량하다. 전신을 쓸어 내려간다. 속이 텅 빈 비를 보고 있다. 겨울이 짧아졌다. 일년이 짧아지는 것은 아니겠지?’

- 김용택 ‘삼짇날’(시산문집 ‘사랑 말고는 뛰지 말자’)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혼자’라는 감각에 대해 어쩌면 사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혼자인 직업이 어디 흔하겠는가. 심지어 서점에 손님이 찾아와도 서점지기는 혼자이다. 더러 서점지기는 손님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비가 온다. 빗소리는 서점지기의 ‘혼자’됨을 증폭시킨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아무 생각이든 골몰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도 잊고 만다. 걱정 많고 가난한 직업이지만, 오롯이 혼자가 되어 빗소리를 듣는 일은 포기할 수 없는 매혹이다. ‘혼자’란 유별난 사실이 아니다.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대화와 사랑을 나눌 때도 존재란 결국 혼자다. 부모나 형제도 나와 같지 않다. 혼자는 쓸쓸해서 사람들은 혼자를 잊으려 노력한다. 친구를 사귀고 모임을 조직한다. 사회성을 기르고 좋은 평판을 얻으려 한다. 스마트폰에의 집착도 실은 고립되지 않으려는 발버둥일 것이다. 되레 요즘은 혼자인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낮밤 없이 도착하는 메일과 메시지만 해도 그렇다. 가만 창문을 바라보며 빗소리를 듣기. 그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기. 이것만으로도 잔뜩 비대해진 자의식을 달래고 타인에 대한 집착을 줄이게 된다. 혼자에서 출발하여 건강하게 어울릴 수도 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나무마다 새순이 돋고 지천으로 꽃이 피리라. 까닭 없이 설레어서 어떤 밤엔 잠도 설칠지 모를 일이다. 그러기에 내게는 이 ‘혼자’가 더 애틋하다. 이 순간이 씨앗이 되어서 바깥의 시간을, 봄과 여름과 가을을 튼튼히 보내게 해줄 테니까. 마침내 겨울이 끝났다.

시인·서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