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영화사의 2진급 히어로 ‘마블’의 할리우드 정복기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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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인사이드
조애너 로빈슨·데이브 곤잘레스·개빈 에드워즈 지음
서나연 옮김│다니비앤비

“신생 영화사의 ‘2진급’ 히어로 영화를 누가 기대했겠나?”

마블스튜디오의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가 시작됐던 2008년 봄 당시 분위기가 이랬다. 1진급 영웅은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정도였다. 아이언맨뿐 아니라 캡틴 아메리카, 닥터 스트레인지, 호크 아이, 블랙 팬서 등 어벤져스 군단은 마블 만화 구독자들만의 영웅이었다. 이 캐릭터들이 실사 영화에서 뛰어다닌다 한들 관심을 끌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불과 십여 년 만에 어벤져스는 전 세계 영웅물의 대명사가 된 것뿐 아니라 영화 이상의 문화 현상이 됐다.

2∼3진급이던 캐릭터로 블록버스터 시리즈 제작을 강행한 마블스튜디오의 성공 과정을 되짚은 책이다. 언론인 출신 작가들이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애호가 3명이 합심했다. 마블 영화 제작진의 수장 케빈 파이기를 비롯해 배우, 감독, 작가뿐 아니라 헤어스타일리스트와 세트 디자이너까지 100여 명의 관계자를 만났다. 1996년 창립한 마블스튜디오의 할리우드 정복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마블은 원래 장난감 제조용 캐릭터를 납품하며 근근이 버틴 업체였다. 자사 캐릭터로 직접 영화를 제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각은 했지만, 그 과정은 하루하루가 고비였다. 마블은 어벤져스 주요 캐릭터의 판권을 담보로 걸고 뛰어다닌 지 1년 만에야 투자은행과 계약을 맺었다. 마블 캐릭터에 대한 열정 외에는 별다른 프레젠테이션 전략이 없었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투자은행이 없었던 탓이다. 5억2500만 달러 투자금은 4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액수였다. 이는 4번의 타석에서 최소 1번은 홈런을 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2진급 영웅 아이언맨이 1번 타자였던 것이다.

아이언맨이 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또한 ‘1진급 배우’가 아니었다. 약물 남용으로 배우 경력을 망친 그는 41세였던 당시 재기의 기회를 찾고 있었다. 아이언맨, 즉 토니 스타크는 사업가·엔지니어로서 재능이 뛰어났지만 알코올 중독과 싸우는 복잡한 인물이다. 존 패브로 감독은 이 캐스팅을 운명처럼 확신했지만 마블 수뇌부의 반대가 거셌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기획인데 사생활 문제가 있는 배우를 쓸 수 없다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다. 패브로 감독은 이를 무시하고 언론에 슬쩍 흘리며 캐스팅을 관철했다. 모든 방면에서 아슬아슬했던 아이언맨은 첫 타석 홈런을 터뜨렸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최고의 아이디어가 승리한다”는 문구가 그 비결을 집약했다. 아이언맨이 “내가 아이언맨”이라고 대중에 선언하고 그간 영웅의 비밀주의를 찢는 1편의 결말을 냈던 것처럼, 마블 영웅은 하나같이 통념을 거스르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모험적 선택을 반복하는 제작이 ‘관행’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마블의 시스템이 있었다. 내부 회의에서 먹힐 만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든지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구조로 운영됐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재능 있는 괴짜들이 마블스튜디오에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맨은 스크린 바깥에서도 1진급 영웅이 됐다. 죽는 것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다는 점에서 끝까지 배트맨, 슈퍼맨 등 기존 영웅들과는 달랐다. 그 자체가 마블스튜디오의 정체성이었다. 464쪽, 2만5000원.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