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고, 엮고, 꼬아버린 캔버스… 평면-입체 넘나드는 세계 비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성희의 개인전 ‘꾸띠아주, 누아주’ 전시 전경. ‘회화로부터’(오른쪽) 옆에 선 관객이 벽에 걸린 ‘공간별곡’을 바라보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 故신성희 ‘꾸띠아주, 누아주’ 展

40년 동안의 회화 실험 탐구
공심 등 주요작품 32점 소개

채색한 캔버스를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재단하고, 그것을 다시 바느질한다. 박음질 사이 ‘뚫린 공간’으로 캔버스 ‘너머’가 보인다. 이것은 회화일까. 이번엔 그 띠를 다른 캔버스들에서 잘라 온 띠와 엮고 꼬았다. 해체된 여러 회화가 중첩되고 교차하며 다시 태어난다. 평면에서 입체적인 ‘무엇’으로. 전자는 ‘꾸띠아주(박음 회화)’, 후자는 ‘누아주(엮음 회화)’로, 회화의 세계를 유연하게 확장했다고 평가받는 신성희(1948∼2009)를 관통하는 개념과 작업 방식이다.

2차원 회화를 ‘사건’이 발생하는 3차원 공간으로 구현했던 신 작가를독창적인 재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의 ‘꾸띠아주, 누아주’는 신 작가 작품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누아주’와 ‘꾸띠아주’ 시리즈를 비롯해 작가의 40여 년 예술 여정을 회고할 수 있는 주요 작품 32점을 소개한다. 1971년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공심(空心)’ 3부작을 비롯해 1990년대부터 작고한 2009년까지, 작가의 작업 절정기에 탄생한 주요 작품들이 대거 공개돼 주목된다.

갤러리 1층 중앙 벽의 ‘공간별곡’(2009)은 ‘누아주’ 시리즈 중 가장 규모가 큰 작업이다. 서너 점의 평면 추상 회화가 해체됐다가 다시 엮어져 완성된 대작으로, 중첩된 겹들은 작가가 천착해 온 다차원적 시간성과 공간성을 잘 드러낸다. 신 작가의 모든 작업이 ‘회화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라면, 이 작품은 아마도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허상의 그림이 아닌 공간의 영역을 소유한 실상으로서 회화의 옷을 입고 빛 앞에 서자”(‘평면의 문:캔버스의 증언’(2005) 작가 노트 중에서)고 했던 작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신이 직접 찢는 파괴의 고통을 품고, 가까스로 그 ‘빛’ 앞에 다가섰을 것이다. ‘누아주’ 시리즈는 전시장 2층에서 더욱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 ‘평면의 진동’ ‘공간을 향하여’ ‘결합’ 등 시리즈의 변주를 한 공간에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지하 전시장에선 ‘꾸띠아주’ 시리즈의 대표작 ‘연속성의 마무리’ 3점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다. 1980년 파리로 떠난 작가는 대성당을 방문했을 때 스테인드글라스로 쏟아지는 빛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에 영감을 얻은 작가는 색채 조각들이 입체적인 구조 공간이 되는 ‘콜라주’ 회화를 탐구하게 됐고, 1990년대 이르러 그 ‘빛’을 ‘꾸띠아주’ 시리즈로 가져온다. ‘연속성의 마무리’는 태양 빛을 닮은 두 개의 추상 회화를 5㎝ 간격으로 정밀하게 재단하고, 재봉틀로 박음질했다. 마주한 곳에는 작가에게 초창기 유명세를 안긴 ‘공심’ 3부작(1971)이 걸려있다. 미술사가 강태희(1947∼2023)가 이를 보고 “창은 그에게 익숙한 하나의 공간이자 끝 간데없이 확장되는 창공 같은 대상”이라 했는데, ‘꾸띠아주’의 비전이 이미 ‘공심’에서 싹을 틔웠던 것이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제자이기도 했던 신 작가는 위로는 단색화 화가들, 아래로는 80년대 민중미술 작가들 사이에 ‘낀’ 작가라고도 볼 수 있다. 1980년대 파리로 활동지를 옮기면서 30여 년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갔지만, 그로 인해 국내에선 비교적 덜 조명된 측면도 있다. 전시는 미완으로 남은 프랑스 개선문 삼색 띠 프로젝트에 관한 영상도 상영하며, 2009년 작고하기 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던 신 작가의 예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됐다. 16일까지.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