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경고[오후여담]

최현미 논설위원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번역에 진심인 작가도 없다. ‘재미있는 소설을 일본어로 옮기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번역은 하루키 월드의 단단한 한 축이 됐다. 그는 평소 창작과 번역은 뇌를 반대로 쓰는 작업이라고 했지만,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왔다. 스콧 피츠제럴드, J D 샐린저, 레이먼드 카버 등 번역 목록은 모두 하루키가 좋아하고 영향받은 작품들이다.

그가 최근 팀 오브라이언의 ‘아메리카 판타스티카(America Fantastica·2023)’를 번역, 출간했다. 오브라이언 역시 그가 줄곧 애정해온 작가이지만, 주제의식이 하루키의 최근 관심에 닿아 있다.

소설은 전직 기자이자 온라인 허위정보 유포자로 전락한 주인공이 은행을 털고 은행원을 인질로 삼아 미국과 멕시코를 떠도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허언증(Mythomania)이 만연하다 못해 역병이 된 미국 사회가 드러난다.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이자 조롱이지만, 곧 우리 이야기기도 하다.

왜 이렇게 거짓이 판치는 세상이 됐나. 하루키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거짓말의 희생자인데 거짓말을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들 거짓말을 당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답답한 현실에서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강하게 말하는 쪽에 마음이 쏠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거짓말쟁이가 이긴다. 조 바이든이나 카멀라 해리스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심한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실이 사라진 시대, 그는이제 사람들이 “모두 벽을 쌓아 성안에서 지키기 시작한 느낌”이라며 이를 ‘세계의 중세화’라고 명명했다. ‘세계화, 소수자,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무너뜨리고 거대한 벽을 쌓는 트럼피즘에 대한 비판이지만 가짜뉴스, 음모론과 극단적 분열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선택은 벽 안에 갇히거나 넘는 양자택일. 그렇다면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하루키의 예루살렘 문학상 수상 연설의 한 대목이 답이 된다. “높고 단단한 벽에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알의 편에 서겠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벽을 사이에 둔 두 세계를 그린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