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사찰과 세심(洗心)[오후여담]

문희수 논설위원

유교 국가인 조선은 불교를 배척했지만, 불교의 역사는 고구려·백제·신라 원삼국 시대부터 시작된다. 사실 조선도 태조를 비롯해 세조 등 불교에 심취한 왕과 왕비가 많다. 전국 곳곳에 1000년을 넘는 사찰들이 자리하는 이유다. 얼마 전 우연히 본 한 유튜브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잘 알려지지 않은 천 년 사찰 몇 곳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특히, 아껴 보려고 책(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뺐다는 낯선 사찰들에 눈길이 쏠렸다. 머리도 식힐 겸, 최근 연휴를 이용해 길을 나섰다.

찾아가기를 잘했다. 이처럼 장엄하면서도 고즈넉한 보물 같은 사찰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번에 이름을 알게 된 나주 불회사는 백제 때 중국에서 온 고승 마라난타가 384년 영광 불갑사에 이어 세운 절로 흥미로웠다. 불상이 1000개라는 화순 운주사는 신비하고도 기묘했다. 길고 넓은 진입로에 즐비한 불상과 탑들은 어디에서도 못 봤던 디자인과 형태로, 경탄 그 자체였다. 화순 쌍봉사는 국내 유일의 3층짜리 대웅전이 특이했다.

순천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답게, 고아하고 아늑한 옛 모습을 간직해 고창 선운사에 비견되는 감동을 줬다. 이 절은 순천 금둔사와 함께 홍매화가 유명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찾았을 때는 봉오리만 맺혀 있어 아쉬웠는데, 매곡동 참매희망센터 주변 매화나무들은 일부 꽃망울을 터트려 위안이 됐다. 불(佛)·법(法)·승(僧)을 상징하는 삼보사찰이 각각 통도사·해인사·송광사라는 사실도 이번에야 알았다. 선암사·송광사, 공주의 갑사·동학사·마곡사 등은 진입로 양쪽의 천 년 나무숲과 깊은 속까지 맑은 개천 덕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이번 탐방에서 최남단인 여수 향일암은 원효 대사가 수도했던 절로, 한 명이 지나기에도 비좁은 바위틈을 헤치고 들어가 만나는 해수관음상이 유명하다. 강화 보문사·양양 낙산사·남해 보리암과 함께 전국 4대 관음성지의 하나로, 기도가 잘 통한다고 알려져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사찰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 듬성듬성 자리 잡은 세심정(洗心亭) 같은 옛 정자와 해탈문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깨끗해진 느낌이다. 이제 속세로 돌아왔으니, 다음 탐방 때까지는 다시 열심히 일하자는 각오를 다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