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역습[오후여담]

이철호 논설고문

전 세계에 ‘빅맥 지수’가 있다면 일본엔 ‘카레라이스 지수’가 있다. 서민들이 즐기는 카레라이스 1인분에 들어가는 쌀, 감자, 당근, 고기 가격을 반영한 지표. 지난 5년간 쌀값이 3배 오르면서 이 지수가 396엔(약 3900원)으로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최근 두 달 사이에 무려 25%나 치솟자 일본 정부가 긴급 비축미 방출에 나섰다.

일본은 식생활 변화로 쌀 수요가 매년 10만t씩 감소해왔고, 전체 농민의 60%가 70세 이상 고령이다. 일본 정부는 보조금을 주며 전작(轉作)을 독려해 쌀 12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논에 대체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쌀 파동은 2023년 기록적인 폭염으로 벼 품질이 나빠져 1등급 쌀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현재 일본의 쌀 60㎏ 도매가격은 50만 원으로 한국(15만 원)의 세 배가 넘는다.

이번 소동은 불가사의하다. 지난해 일본 쌀 수확량이 679만t으로 전년보다 18만t 늘었기 때문이다. 다만, 농협 등 집하업체의 매수량이 215만t으로 21만t이나 줄어든 게 수수께끼다. 누군가 미리 농민에게 쌀을 사서 쟁여 놓았다는 의미다. 중국 투기 자본이 매점매석한다거나 외국 관광객이 몰려와 쌀 소비가 늘었다는 등 온갖 괴담이 떠돌고 있다. 일본 정부가 비축미 21만t을 방출하는 것도 몰래 증발한 물량과 딱 맞추기 위해서다. 뒷북치기라는 비난도 나온다. ‘농민 보호’를 이유로 비축미 방출을 막다가 지난 1월에야 유통 혼란 때도 방출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1인당 쌀 소비는 110㎏에서 55㎏으로 반 토막 났다. 정부는 벼 재배면적을 줄이느라 보조금을 뿌리고, 더불어민주당은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비싸게 매입하도록 양곡법을 고집한다. 정부는 140만t 비축미를 관리하는 데만 4500억 원을 쓰고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한발 앞서 똑같은 정책을 폈던 일본이 ‘쌀의 역습’에 신음하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쌀 부족 대비로 정책을 대전환하면서 수출을 돌파구로 삼은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2030년까지 쌀 수출을 현재의 8배인 35만t으로 늘리고, 이를 위해 식품·외식 업체의 해외 진출을 파격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쌀 파동이 나면 즉각 수출분을 국내로 돌리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