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1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한국을 둘러싼 통상 현안에 대해 짚어보고 있다. 백동현 기자
■ 현안 인터뷰 -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국가별 차등’ 상호관세, 美도 생소
품목관세보다 불확실성 더 증폭
韓, ‘더티15’ 지정 피하기 어려워
低관세 불구 대미 무역흑자 큰탓
조선, 기술력 갖춰 美와 협력용이
알래스카LNG, 인프라투자 부담
美, 제조업 키울 ‘온쇼어링’ 추진
韓, 경쟁력 강화방안 고민 시급
“상호관세는 ‘게임체인저’입니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정부가 대응을 잘해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확보해 주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섰을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등을 통해 통상 압박에 대응했던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1일 문화일보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2기의 통상 압박 강도가 1기에 비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상호관세를 비롯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 압박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세계 무역 체제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은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한국이 미 행정부가 거론한 ‘문제적 15% 국가들(Dirty 15)’ 리스트에서 빠지기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정부의 고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 1기와 2기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통상 압박이 더 강하다고 보는지.
“정말 1기 때보다 2기 때가 강력하다. 예를 들어 1기 때는 4년 내내 중국에 대해서 조치한 것이 3%대이던 관세를 19.3%로 올린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 출범 두 달도 안 돼 (관세율을) 20% 추가했다. 그리고 그때는 멕시코와 캐나다로 전선을 확대하지도 않았다. 관세 부과 범위를 비교하자면 1기 때는 약 400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번에는 1조 달러에 가깝다. 더 문제는 아직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이다. 상호관세라는 본 게임에 들어서면 영향을 미치는 수입품 규모는 수조 달러에 이를 것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의 경험으로 이제 ‘본인의 소신이 맞았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고 그게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시대사조와 맞물려서 통상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 상황이 짧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철강·자동차 등 구체적인 품목에 대한 관세와 비관세 요소를 반영한 상호관세 중 어느 쪽이 더 큰 수출 불확실성·불안 요소라고 볼 수 있는지.
“구체적 영향은 원래 관세율이 얼마인가를 평가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사전 불확실성 측면에서 우리같이 통상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상호관세는 ‘게임체인저’다. 왜냐면 우선 미국이 이런 것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철강 같은 품목은 똑같이 관세를 맞으면 다른 나라와 같은 수출 여건이니까 정면돌파하거나 제품 경쟁력 등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데 상호관세는 국가별로 차등적으로 부과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 몇 %인데 경쟁국이 무관세라고 하면 우리의 상대적인 경쟁력이 매우 달라질 수 있는 조치다. 통상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통상 체제는 세계무역기구(WTO), 즉 다자체제·자유무역체제로 적어도 나라들끼리는 차별 없게 하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그러나 상호관세는 WTO를 탈퇴하지 않고도 WTO를 무력화·형해화하는 게임체인저여서 불확실성이 크게 증폭된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최근 관세 정책과 관련해 ‘문제적 15% 국가들’을 지목하겠다고 예고했는데, 한국이 여기에 포함될까.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무역적자 8위 국이다. 또 대미 수출 증가율이 가파르다. 그런데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원래 상호관세에서 첫 번째 기준이 관세율이다. 미국의 무역적자국들을 보면 우리 앞에 유럽연합(EU)이나 중국 등 우리보다 관세율이 높은 나라들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관세율은 굉장히 강점이다. 우리는 공산품 관세율은 0%, 농산물(관세율)을 합쳐도 0.79%라서 관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에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구조적으로 수년째 무역적자가 누적되는 나라는 비관세 장벽이나 불공정 무역 행위, 보조금, 환율 같은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똑같은 비관세 장벽도 무역 흑자국의 장벽보다 무역 적자국의 장벽이 뭔가 더 크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 한국) 무역적자 규모를 봤을 때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관세 압박 대응 카드로 한국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나 한·미 조선 협력 등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확실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을지.
“우리가 갖고 있는 조선소가 있고, 어느 나라보다 기술 경쟁력이 있는 배를 정해진 시간 내에 건조할 수 있는 시설들이 다 있다. 미국이 관련 법을 개정해서 (해외에서) 배를 건조할 수 있게 하든지, 유지·보수·운영(MRO)을 하든지 그런 부분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가 경쟁력 있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가) 우리 아니면 중국인데, 미국이 중국은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이 원하는 일정과 사양대로 할 수 있는 인프라나 기반이 있기 때문에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처럼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알래스카는 거기서 가스를 가져오기 위한 인프라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 비용과 시간이 걸리니까 그에 따른 불확실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불확실성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이 뭔가 지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세한 상황들을 보면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세부 논의 내용을 봐야겠지만, 어쨌든 조선은 우리가 지금 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당장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알래스카 자체는 아주 장기적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EU나 캐나다, 중국 등의 경우 미국의 관세 부과 정책에 대해 보복 관세로 대응하는 분위기인데 다른 국가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맞불 대응 안 하는 나라가 훨씬 많다. 캐나다도 관세로 대응하려다가 내렸고, EU도 미국산 위스키 등에 관세를 부과하려던 것을 보류했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200% 관세 얘기하면서 ‘보복 관세 매기면 우리는 더 하겠다’는 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는 다른 나라들이 WTO 협정 위배 등을 거론하며 제소도 많이 했고, 각 나라가 새로운 사조가 아니라 일시적 예외적인 현상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그 나라들이 변화하는 체제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거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길을 찾자는 식으로 많이 가고 있다. 그나마 중국과 EU같이 시장이 큰 국가·지역들은 미국산에 관세를 높이기도 하는데 우리는 1200억 달러 정도 대미 수출을 하고 700억 달러 미국산 수입을 해서 무역흑자 500억 달러 정도 남기는 상황에서 미국에 보복 카드를 쓰고 상황이 에스컬레이트(악화)하면, 오히려 우리 기업들이 정부에 ‘그러지 말아달라’고 할 것이다. 우리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90%가 넘지만 미국은 27%밖에 안 된다. 결국 자국이 보복 조치를 하고 그에 또다시 보복을 받았을 때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수 있는지 판단을 하고 조치를 결정하는데, 중국도 그래서 미국이 전체 품목에 20% 관세를 부과해도 미국산 몇몇 품목에 선별적으로 조치하는 식으로 전면적인 관세 인상을 안 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관세전쟁’이 국가 간 물리적 충돌이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이번 상황의 결말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관세전쟁이 무역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본다. 다자·자유무역체제에서 양자로, 국가별로 관리하는 관리무역체제로 바뀐다는 것이다. 미국이 (무역 정책을) 바꾸면 다른 나라들도 장벽을 엄청 높인다. 통상이나 세계무역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인데, 그게 전쟁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른 지정학적 요인까지 맞물려야만 한다. 관세만으로도 패러다임 자체는 완전히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는 전쟁이라기보다는 제조업 경쟁으로 귀결될 여지가 많다. 과거 미국 같은 선진국은 서비스업을 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제 제조업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제조와 함께해야 보다 근본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중산층이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선진국이 제조업을 하겠다고 나서면 우리 제조업은 어떻게 되겠는가.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정부와 달리 ‘부품과 자재를 왜 한국에서 가져오느냐, 우리 땅에서 공급해야지’라며 미국에서 다 하겠다는 ‘온 쇼어링’(Onshoring)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면 우리 제조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긴장감을 가지고 규제 완화 등 제조업이 계속 경쟁력 갖추고 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지금까지의 관성을 버리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