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의 남아공 트라우마[오후여담]

이미숙 논설위원

아프리카 최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는 넬슨 만델라다.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우며 27년을 옥중에서 보내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인종 화해를 이끌어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이듬해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이 됐다. 남아공의 인종적 평화를 추구한 공로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스먼드 투투 대주교, 인종 화해를 담은 소설로 199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네이딘 고디머도 남아공의 별이 된 인물이다. 이들 덕분에 남아공의 국제적 위상도 덩달아 높아졌다.

일론 머스크(54)는 생존 인물 중 가장 유명한 남아공 출신 인사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71년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나 18세 때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그는 테슬라, 스페이스X 등을 창업한 억만장자 CEO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활동하며 “미국 역사상 어떤 개인보다 많은 권력을 쥔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며 연방 정부 조직 폐쇄 및 직원 해고 등 일방통행식 정책을 펴자 ‘트럼프 행정부를 위기로 몰아넣는 문제적 인간’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하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에는 ‘머스크가 어디서 왔는지 잊지 말라’는 칼럼이 실렸다. 아프리카 인터넷 매체 편집장인 윌리엄 쇼키는 이 글에서 ‘미국에서 머스크에 대해 논의할 때 간과하기 쉬운 요소는 그가 남아공 백인 엘리트 출신이라는 점’이라면서 ‘남아공 최상층 백인의 세계관을 갖고 성장한 그는 백인 정착자들의 지배 규범 붕괴 문제에 민감하다’고 했다.

남아공은 1994년 흑백화해시대 개막 후 흑인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부패와 폭력이 만연한 실패 국가가 됐다. 머스크가 미국 및 세계 각국의 극우 세력을 지원하는 것은 백인 권력 붕괴 후 망가진 남아공 현실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머스크가 MAGA 운동을 지원하는 것은 미국이 다인종 국가가 되면 제2의 남아공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일지 모른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주요 20개국(G20) 주최국인 남아공 방문을 거부했고, 최근엔 미국 주재 남아공 대사가 미국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추방됐다. 머스크의 ‘모국 혐오증’이 미국 외교까지 바꿔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