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허남정 단장 동행기<4>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울산으로 가는 도중 경주 첨성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지난주 안동을 떠나 의성, 군위, 영천, 경주, 구어를 거쳐 이곳 울산까지 466km를 걸어왔다. 최종 목적지 도쿄까지는 이제 730km를 남겨놓고 있다.

걸으면서 내내 국난에 가까운 산불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웃 나라 일본의 산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3일 에히메, 오카야마, 미야자키 등에서는 주민 1만여 명이 대피했다. 비 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니 자연 앞에서 현대 과학의 왜소함을 느낀다.

오늘은 19일 차, 경주를 떠나 울산광역시까지 걸어왔다. 만개한 가로수 벚꽃을 본 일본 단원들 속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은 사무라이 꽃은 사쿠라’라는 말도 있듯이 그들의 벚꽃 사랑은 각별하다. 산불이 지속되는 울산 지역민의 정서를 감안해 행렬의 깃발 숫자를 줄이라고 본부에서 연락을 해왔다. 환영 행사 규모도 대폭 축소되었다고 한다.

지난 한 주간 걸어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의성군에서는 김주수 군수 이하 직원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뿐만아니라 저녁에는 싱싱하고 당도가 높은 딸기 등 간식거리도 숙소로 보내왔었는데. 의성 산불 소식에 걷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어느 식당 근처에서 휴식을 하고 있을 때는 젊은 주인이 얼음을 동동 띄운 매실차를 가져와서 우리를 대접해주기도 했다.

임금의 명령으로 조선통신사를 위해 전별연을 열고 마상재를 펼쳤던 영천시의 환영은 특별했다. 어린이들을 포함, 시민들이 함께 걸었다. 그리고 조양각 앞에서의 전별연은 성대했다. 초등학교 5학년 김소연 양이 엄마와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전날 걸으며 힘들어하는 소연의 손을 잡고 ‘하나 둘! ’ 구령을 붙이며 함께 걸어주었던 어느 일본 단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파파고로 번역한 일본어 문장을 흉내 내어 깨알같이 쓴 손편지와 함께 마스코트를 선물로 가져왔다.

‘조선통신사에서 만난 분께. 안녕하세요. 저는 조선통신사에서 만난 김소연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는 휴대폰에 걸 수 있는 마스코트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휴대폰 마스코트는 유튜브를 검색하면 나옵니다. 우리들이 만날 수는 없어도 이 마스코트를 보면서 저를 생각해주세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 2025년 3월 23일 김소연’

일본 단원 다카하시는 이 마스코트를 부적처럼 평생 몸에 지니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도 5학년짜리 손녀가 있다. 10회를 빠짐없이 참가한 엔료 교코는 한국 음식이 맛있고 양국 회원들과 걸으며 교류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은퇴한 남편이 평소 헬스에 나가지만 본인은 생활비를 절약하며 2년마다 있는 조선통신사 참가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녀는 전직 고등학교 화학 교사 출신인데 남편이 서울의 한일합작 기업에서 10년여 근무한 덕분에 우리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나가노 현에 사는 재일동포 임은 씨는 최근 일본의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했다. 30년 넘게 물가가 오르지 않았던 일본사회인데 서민들에게 주는 타격이 클 것이다. 모든 물가가 대체로 20%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쌀값은 두 배가 되었고 1000엔이면 먹었던 라면 한 그릇이 지금은 2000엔 이라고도 했다.

승용차를 타고 가던 어떤 중년 남자의 선행도 훈훈했다. 행사의 취지를 전해 듣고는 생수를 한 박스를 사 와서 전해주고 떠나갔다. 어느 시골 가게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사무국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려 모두 맛있게 먹었는데 놀랍게도 제조일자가 2022년이라고 찍혀 있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너무 맛있게 먹은 터라 한바탕 웃고 말았다. 밤에 자다가 깨어 해골에 고인 빗물을 맛있게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대사가 생각났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다.

오늘 저녁에는 이곳 출신 충숙공 이예 기념사업회 간부들이 와서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대접해 주었다. 그는 조선 최고의 일본통 외교관이자 최초의 조선통신사였다.

한두 방울 내리던 비가 어느새 저녁에는 제법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경남북 산불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 같다. 내일은 8시 30분에 태화루에서 열리는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다음 목적지 양산시 덕계까지 29km를 걷는다. 모래는 드디어 부산이다.

제10회 조선통신사 단장 겸 정사 허남정(전 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영천 조양각 앞에서 단원들과 환영 나온 시민들이 강강술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