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기사 넘어 인격도 신뢰줘야”… 보수 지성 눈으로 불의 맞선 언론인[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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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전 본보 사장 별세
박종철 사건 보도 이끌어

“기자는 기사의 질뿐만 아니라 인격에서도 신뢰를 받아야 한다.” 1일 87세로 타계한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은 이런 소신을 스스로 지킨 언론인으로 주변의 신망을 받았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동아일보 1기 수습기자로 입사했다. 입사 직후인 1962년 이른바 ‘삼양동 기사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그가 서울 삼양동 판자촌에서 63세 노인이 굶주림과 추위로 숨졌다는 기사를 쓴 뒤 북한 방송이 이를 빌미로 남한 정부를 비난하자 정권이 그를 반공법상 이적 혐의로 구속한 것이다. 그는 정치부 기자로 청와대를 출입할 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울 정도로 가까이 지켜보며 경제개발에 대한 헌신을 인정했으나 비판적 언론을 탄압하는 것엔 부정적이었다.

1987년 편집국장 시절엔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보도를 이끌었다. 당시 그는 정권의 압력이 거세지자 후배 부국장을 불러서 “내 신변이 어떻게 되더라도 이 사건은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아일보 논설실장, 상무이사를 지낸 뒤 1995∼1997년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처럼 여론을 선도하는 고급지가 한국에도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면에 반영하기 위해 애썼다.

이후 언론학계로 옮겨 고려대와 성균관대 등에서 강의하고 세종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정치문화 선진화와 한국 민주주의 리더십을 집중 연구하며 학술·저작 활동을 왕성하게 펼쳤다. 저서로 ‘항변의 계절’ ‘체험적 기자론’ ‘인터넷시대의 취재와 보도’ ‘6.25전쟁과 미국’ 등이 있다. 특히 ‘한국보수세력연구’ ‘한국진보세력연구’는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을 묘파해낸 역저로 평가받는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주의 지성인으로서 우파의 혁신과 헌신을 강조하고 좌파의 위선과 독단을 경계했다.

관훈클럽 총무,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삼성언론재단 이사,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 고문, 광화문문화포럼 회장, 화정평화재단 이사장, 학교법인 태양학원 이사로도 활동했다. 동아대상(1980), 위암 장지연 언론상(1993), 인촌상 언론출판부문(2007), 제1회 자랑스런 편협인상(2023) 등을 받았다.

유족은 홍익대 교수를 지낸 부인 김은산 씨와 남정호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남은경 고려사이버대 교수, 남제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등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 3일 오전 11시.

장재선 전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