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진화 시킨 불 진화 못하는 인간[북리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16년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맥머리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로 폐허가 된 풍경. 당시 화재로 주택과 건물 2400여 채가 전소했다. 곰출판 제공

■ 파이어 웨더
존 베일런트 지음│제효영 옮김│곰출판

캐나다의 포트팩머리 산불
이상기후에 역대최대 피해
발화 쉬운 주택·물질 한몫

문명 발전 동력이었던 불꽃
인간의 대기 환경오염 탓에
통제 불가 재앙으로 돌아와

#1. 2016년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맥머리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 발생했다. 약 10만 명이 대피하고 10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으며, 서울의 3배가 넘는 면적이 불에 탔다. 주택과 건물 2400여 채도 사라졌다.

#2. 2025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광역권에서 대규모 산불이 잇따라 발생해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수천 헥타르의 산림이 소실되고 유독물질이 퍼지면서 건강 피해가 컸으며, 정전과 교통마비로 도시 기능이 멈췄다.

#3. 지난달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열흘간 이어져 서울 면적의 80%에 달하는 지역이 소실됐다. 30명이 사망하고 3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주택과 농가, 축사가 파괴되고 신라시대 창건된 천년고찰 고운사는 전소됐다.

세상이 불타고 있다. 2016년 캐나다에서, 2025년 미국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먼 나라의 재난처럼 느껴졌지만 지난달 우리가 직접 겪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세계는 지금 ‘불과의 전쟁’이 시작된 상태라는 것을. 그리고 마치 이번 산불을 예견이라도 한 듯 출간된 이 책 ‘파이어 웨더’는 한국과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화재들이 단순한 우연이나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총체적 재난이라고 말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듯 세계는 ‘불의 굴레’에 들어섰다.

인류에게 불은 오랫동안 힘의 원천이자 문명의 동력으로 기능해왔다. 자연에서 일어난 불과 달리, 석유와 가스를 기반으로 한 불은 인간에게 순종적인 존재였고, 우리는 그 불과 나란히 공생하며 더 따뜻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다만 우리는 몰랐다. 그 불이 결국 우리 손을 벗어나, 통제가 불가능한 자연의 재앙으로 되돌아올 줄은. 책에 묘사된 2016년 포트맥머리의 상황은 한 편의 아포칼립스 영화와 다를 바 없다. 소방대가 적시에 투입되었음에도 불길은 수 주간 멈추지 않았고, 도시 곳곳에 ‘화염 토네이도’가 휘몰아치며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과거의 축복이던 불이 현재의 재앙이 됐다.

자연에서의 불은 본래 이토록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화재는 종종 실화로 발생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일어난다. 오히려 어떤 생태계에선 불이 꼭 필요하다. 포트맥머리를 둘러싼 아한대림(아한대의 특징적인 삼림)은 주기적으로 불을 통해 정화되고 재생되는 생태구조를 지닌다. 이 지역의 대부분 나무는 약 100년에 한 번은 반드시 발화해야 하며, 열매 속 씨앗은 햇빛보다 높은 열에 노출되어야만 밖으로 배출된다. 불이 없으면 숲은 스스로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뀐 것은 ‘리듬’이다. 이전에는 번개처럼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시작해 천천히 확산했던 불이, 지금은 이상 고온과 낮은 습도라는 “갓 피어난 불의 이유식” 같은 조건들에 의해 훨씬 빠르게 확산된다. 게다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물질들은 불을 더욱 키운다. 폴리에스터와 나일론으로 만든 옷가지, 소파 쿠션, 장난감, 니스와 래커를 바른 바닥재까지, 우리는 사실상 고인화성 물질을 입고, 깔고, 끼고 살아간다.

발화는 우연과 자연의 영역일 수 있다. 하지만 기후는 이제 인간의 몫이다. 과거에는 기후 역시 자연의 일부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대기의 성질을 바꾸어, 새로운 기상 조건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말한다. 기후학자들조차 이렇게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도래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으며,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 이산화탄소 배출이 한때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이었던 화산 활동보다 빠르게 영향을 미치게 될 줄도 몰랐을 것이라고. 그 결과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화염 토네이도다. 21세기 화재의 새로운 특징인 이 현상은 토네이도와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치는 것으로, 수평 풍속은 5등급 허리케인에 맞먹고 숲 하나를 순식간에 삼킬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가며 공기의 상승기류가 강해져 생기는 이 불 폭풍은 전문가들조차 “극단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인간이 만든 자연 현상이다.

책은 르포 형식으로 펼쳐진다. 불길이 앞마당까지 번지자 집과 차를 남겨둔 채 황급히 대피하는 사람들, 대피하는 차량으로 끝없이 막히는 도로 위로 흩날리는 불씨와 재의 풍경. 캐나다 대화재가 일어난 과정을 시간순으로 생생하게 따라가며 거대한 재난을 마주한 인간의 무력감을 보여준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대가로 신들에 의해 영원히 결박당했다. 그리고 그 후예인 우리를 저자는 ‘호모 플라그란스’, 즉 ‘불태우는 인간’이라 명명한다. 불은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형벌이었다. 스스로 피운 불에 갇힌 우리는 프로메테우스의 비극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 588쪽, 2만8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