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품고 왔는데 절망 안고 떠난다”… 산불 피해에 인구 유출마저 우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사상 초유의 피해가 난 가운데 지난달 24일 의성군 점곡면 한 과수원에서 산불진화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의성=박천학 기자

의성·청송·영양·영덕 인구소멸고위험지역
피해 주민들 “살 길 막막하다”
지자체들, 유출 막기 위해 전방위 지원 노력

영양=박천학 기자

“아이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희망을 품고 와서 절망만 안고 떠나렵니다.”

지난달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의성을 비롯해 안동·청송·영덕·영양 등 경북 북동부 5개 시·군을 집어삼킨 가운데 지방소멸로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인구 유출 우려마저 낳고 있다. 안동을 제외한 4개 지역은 소멸위험지수 0.2 미만의 소멸 고위험지역이다. 지자체들은 망연자실한 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살 수 있도록 전방위 지원에 나서는 등 인구 유출 방지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5일 경북도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3일 기준 영덕 1520채, 안동 1230채, 청송 770채, 의성 357채, 영양 110채 등 총 3987채의 주택이 피해를 봤다. 또 이재민 2345명이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청송군 진보면사무소에서 만난 이모(여·66) 씨는 “집이 모두 탔는데 고작 최대 3600만 원의 주거비를 지원받아 어디에 쓰겠느냐”며 “차라리 도시로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남편과 함께 귀촌했다. 그는 자신이 사는 후평2리 30여 가구 대부분 집이 피해를 봤고 과수원은 쑥대밭이 됐다고 했다. 이 씨는 “이 마을엔 젊은 귀농·귀촌인이 절반 정도 산다”며 “이들은 부푼 희망에 안고 이곳을 찾았는데 빚만 떠안는 등 절망만 남아 농사짓는 것을 후회하며 매우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저출생 고령화로 농촌 지역은 인구 위기를 겪는 데다 반복되는 수해와 산불 등 자연·사회재난으로 안전지대마저 사라지고 있다. 앞서 영양군 석보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한 주민들은 “이러한 악몽이 되풀이할까 걱정이고, 그래서 삶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불로 마을 전체가 불에 타다시피 한 석보면 화매리에선 일부 고령층은 이미 자식이 사는 도시로 떠났다. 한 주민은 “도시에 사는 자식의 애타는 요구에 수십 년을 산 고향을 등지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군의 경우 출생아 수는 2013년 109명, 2015년 90명, 2023년 29명, 2024년 25명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합계 출산율도 2013년 1.666명, 2015년 1.517명, 2023년 0.72명, 2024년 0.64명으로 감소했다. 인구도 2014년 1만8297명에서 2024년 1만5328명으로 줄었다. 영양군은 이러한 사정에 미얀마 난민 유치에 나섰다. 의성과 영덕도 마찬가지로 이번 산불로 인구 이탈이 우려되고 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 지역에는 주민 1명이 아쉬운 상황인데 산불로 인구마저 감소가 걱정되는 등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며 “실의에 빠진 주민들이 안정을 되찾아 삶의 터전에 머무르도록 주거와 농업 등 모든 분야에 전력해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