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마음 이어야 할 시간… 치유·통합의 리더십 절실”

■ ‘尹파면 이후…’ 문화·예술·종교계 원로들의 제언

정리 = 안진용·박동미·장상민 기자

이제는 통합과 화합의 시간이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한민국은 사분오열됐다. 대립과 반목이 앞섰고, 가짜뉴스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판결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지난 다섯 달가량 광화문과 안국역을 중심으로 맞서던 시위대는 물러났고, 지난 주말 상춘객들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일상으로의 복귀다. 그래도 상처는 남았다. 서로가 할퀸 자리는 선명하다. 이제 그 생채기를 치유할 차례다. 이념을 앞세운 정치를 뒤로하고, 위로와 공감을 비롯한 문화·종교가 힘을 발휘할 순간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선고까지 123일간의 혼란이 수습되는 국면에서 유종호(평론), 김동호(영화), 윤흥길(문학), 류영모(종교) 등 문화계 대표 인사들에게 새로운 리더십과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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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정당 승리로 여겨선 안돼
새 지도자, 무엇보다 유능해야

■ 유종호 평론가·前대한민국예술원회장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대해선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조치를 비롯해 긴박하게 총력 대응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대행 체제의 불안감을 해소하게 됐다는 의의도 크다. 다만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탄핵이라는 결과가 특정 정당의 승리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80년에 이르는 지난 세월 동안 명예롭게 자리에서 물러난 대통령이 많지 않다. 누군가는 불명예스러운 하야와 탄핵, 투옥 그리고 심지어 죽음으로 대통령직을 마무리해야 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은 스스로 분수에 맞는 대통령을 뽑는다는 말이 있다. 번번이 죽음과 탄핵에 처하는 대통령을 뽑았다는 것은 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반성해야 할 점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무엇보다 유능해야 한다.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경험이 많다고 하기 어려웠다. 지나온 정치적 경험을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었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또한 국민과 도덕적 연결성을 가지는 지도자여야 한다. 살아온 인생에서 거짓이 수두룩하다면 국민이 그가 그리는 미래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 총명한 국민으로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도덕적, 시민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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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달라도 이해하는 게 중요
화합의 문화 콘텐츠 공유해야

■ 김동호 前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문화계 스스로가 비록 이념과 사상이 다르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화합하고 또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관객들에게 좋은 영향과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예술 영화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관객 수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더 줄어들었다.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좋은 영화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관객이 늘어난다. 영화를 투자하고 배급하고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상업적인 영화보다는 예술적인, 작품성이 강한 작품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곧 칸국제영화제 초청작이 발표되는데, 지난해와 재작년에도 경쟁 부문에 올라간 한국 영화가 없다. 좋은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젊은 감독들을 발굴하는 등 젊은 동력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쪽은 젊은 감독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데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를 찾기 어려워졌다.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좋은 메시지를 널리 전파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보다 작품성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감한 투자와 제작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영화 시장의 부흥을 넘어, 공감가는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며 화합과 배려의 길로 나아가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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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벗어난 결정이 번복된 것
이제는 ‘이성의 시간’이 돼야

■ 윤흥길 소설가·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저는 좀처럼 욕설을 내뱉지 않는 사람인데 계엄 이후로 입이 험해졌다. 외국에 사는 동생조차도 주변 외국인들이 한국의 사태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창피하고 서글퍼서 힘들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 사람이라면 입이 험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파면 선고를 지켜보며 우선 내 입부터 단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실추된 국위의 회복은 물론 서민들의 살림살이도 따끈해져 서로를 향한 날 선 말들이 줄어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이성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감정을 앞세워 상식을 벗어난 결정이 반복됐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를 위해 언론과 정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가짜뉴스’를 퍼뜨려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을 멈춰야 한다. 섬세한 접근으로 시스템을 재정비해 가짜뉴스를 단속할 수 있는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를 잘못 뽑으면 모든 국민과 나라 전체가 얼마나 힘들고, 끝도 없이 추락하는가에 대해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다. 국민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할 줄 아는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국가에 대한 책임감이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심보다 큰 사람만이 국민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화합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실추된 국위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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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것들 재건기회로 삼아
‘공의·정의’ 바로 세워야할 때

■ 류영모 목사·前한교총 회장

“기쁜 사람도 있고, 다소 불만스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확증편향이 심해지는 세상에서, 자신의 반대편 끝에 선 사람을 수용한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결과를 너그러이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일로 승리에 도취되는 것도, 절망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 모두 종국엔 ‘애국’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 아닌가. 이런 차원에서 서로 자제해야 할 것이다. 그저 이번 일을 무너진 것들을 재건할 기회로 삼고, 담대히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성경 창세기의 18장 19절이 떠오른다. 이 구절은 ‘여호와의 도’, 즉 ‘공의’와 ‘정의’를 강조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여호와의 도’란 교회 안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국가적으로 확장된 의미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법적 정의이자 사회적 자비, 인도주의적 사랑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종교·사회·정치 지도자들의 뼈저린 반성과 각성이 있어야 한다. 탄핵소추안 의결부터 심판까지 이어진 분열과 혼란에 침묵하고 눈감은 이들이 많다. 비겁했다. 이제 모두를 아우르는 치유와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대선까지 깨끗하고 지도자들이 정당한 태도로 나라를 화평하게 이끌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