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北에 철저히 속았다… 마지막엔 별 수모 다 받아”[영상]
“문재인, 北에 철저히 속았다… 마지막엔 별 수모 다 받아”[영상] 지난해 11월 가족과 함께 귀순한 리일규(52·사진)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가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탈북선원 강제북송 사건’(2019년)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북한에 철저히 속아 별 수모를 다 받았다”고 평가했다. 최근 북한이 10차례 살포한 ‘쓰레기(오물) 풍선’에 대해선 “북한 출신으로서 유일하게 수치심을 느낀다”고 털어놨다.리 전 참사는 24일 문화일보에서 진행된 단독 인터뷰에서 탈북선원 강제북송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며 “한국에 온 이상 대한민국 국민인 그들이 안 가겠다고 몸부림치는데 (북으로) 밀어 보내는 장면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북에서 온 사람들은 누구나 아픔 하나쯤은 갖고 있는데 상처에다 소금을 뿌린 격이었다”고 강조했다.그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모든 (남측) 대통령의 업적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그들은 북한에 의해 철저히 속았다. 마지막에 별 수모를 다 받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북측이 문 전 대통령의 2019년 8·15 경축사를 두고 “삶은 소 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비방한 것을 일컫는 것인지 묻자, 그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할 소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리 전 참사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해선 “(북한 간부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신임을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해선 안 되는 일을 가리지 않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전체 인터뷰 영상은 문화일보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munhwailbo)에서 시청할 수 있다.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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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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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청문회 이틀 연속 여야 충돌만, 양손에 든 반박 자료 놓고도 감정싸움
이진숙 청문회 이틀 연속 여야 충돌만, 양손에 든 반박 자료 놓고도 감정싸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이틀째인 25일 이 후보자가 답변 과정에서 양손으로 반박 자료를 든 것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였다. 후보자 자질·능력을 검증하기보다는 감정싸움만 난무하는 인사청문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이 후보자는 이날 오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MBC 인트라넷 해킹 자료 출력물을 양손으로 들었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의 ‘트로이컷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직원을 사찰했다는 MBC 내부 의혹이 있다’는 질의에 출력물로 답변한 것이다. 해당 출력물에는 ‘오늘의 식단’으로 콩밥 등이 표시돼 있었고, 이 후보자는 이를 읽기도 했다.이에 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그거 내리라”며 “지금 피켓 투쟁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는 몇 살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개인정보라 얘기하지 않겠다”고 답하자, 여야 의원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최 위원장은 “후보자처럼 피켓을 양쪽에 들고 코믹하게 이 위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그런 행동을 하는 후보자가 있었나. 저는 조롱으로 느꼈다”며 “사과하라”고 했다. 이 후보자는 “왜 자료를 한 손으로 들어서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고 (두 손은 안 되는가)”라고 따졌다.여야는 참고인인 강규형 전 KBS 이사의 퇴장 조치를 두고도 공방을 벌였다. 최형두 국민의힘 간사는 “강 전 이사가 전날 퇴장하면서 과방위원장 보좌진으로 보이는 분에게 상당한 모욕과 겁박을 받았다”고 지적했고, 최 위원장은 “위원장한테 삿대질하고 달려오다가 제지당했다”고 반박했다. 전날에도 여당 의원과 이 후보자가 충돌했다. 황정아 민주당 의원이 “5·18 민주화운동 폄훼 글에 ‘좋아요’를 누른 맥락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자 이 후보자가 “제가 아는 분이라든가 제게 도움을 주셨던 분들의 글에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이른바 ‘좋아요 연좌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이 후보자는 “앞으로는 손가락 운동에 신경을 쓰겠다”고도 했다. 윤정선·김대영·김보름 기
‘티메프’ 신용대란… 중소 판매사 줄도산 위기
‘티메프’ 신용대란… 중소 판매사 줄도산 위기 싱가포르 기반의 e커머스 플랫폼 큐텐 계열사인 티몬·위메프 셀러(판매자) 정산 지연 사태가 ‘신용대란’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 판매사들을 중심으로 신용 위기와 연쇄 도산에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긴급 현장조사 등 실태파악에 나섰다. 류화현 위메프 공동대표는 25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미정산 대금을 큐텐 차원에서 확보하고 있다”며 “소비자 피해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금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들도 여행상품의 카드결제 취소가 가능하도록 풀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판매자와 소비자 이탈이 가속화하는 ‘스노볼’ 현상이 지속될 경우 거액의 판매대금이 물린 소상공인이 줄줄이 도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연쇄 도산이 현실화하면 은행 등 금융권 역시 피해가 불가피하다.유통업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 등 큐텐그룹 계열 전자상거래(e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6만 곳 가운데 상당수는 중소 판매자다. 대부분 자금 사정이 열악해 판매대금 정산이 제때 이뤄져야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곳들이다. 일각에서는 70억 원까지 물린 중소 판매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판매자는 “수억 원이나 되는 대금 지급을 받지 못해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이번 달을 버틸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월간 1조 원이 넘는 티몬·위메프의 거래액을 감안할 때 피해액이 많게는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긴급 현장점검을 실시해 주문을 취소한 소비자에게 대금 환불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최준영·전세원 기
중앙지검장 → 검찰총장 보고 ‘3시간 공백 미스터리’
중앙지검장 → 검찰총장 보고 ‘3시간 공백 미스터리’ 지난 20일 김건희 여사를 조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명품가방 수수 의혹 관련 조사 사실을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지휘부에 당일 오후 8시 이전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검장은 이로부터 약 3시간 지난 후에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조사 사실을 보고했다. 대검찰청은 총장 보고가 늦어진 사실을 중심으로 진상 파악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은 수사팀의 보고 내용만으로는 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검사들은 지난 20일 김 여사를 상대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조사를 마친 뒤 오후 7시 40분쯤 이 지검장 등에게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준비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검장은 이 총장에게 이날 오후 11시 16분쯤 이러한 사실을 보고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지휘권이 없지만, 명품 가방 사건에 대해서는 보고 받을 수 있었다. 대검 감찰부는 보고가 늦어질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진상 파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당시 보고 계통에 있던 이 지검장과 박승환 1차장, 조상원 4차장 지휘부를 상대로는 구체적인 당시 상황과 사실관계 등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선 검사들은 총장 보고 시간을 몰랐고, 이후에 보고 시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앙지검은 당시 수사팀이 보고했을 당시에도 통신 제한 문제로 조사 착수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어느 정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대검으로 보고한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수사팀은 지휘부에 ‘조사 준비하러 가겠다’ ‘앞으로 전화통화가 어려울 것 같다’는 취지로 보고했을 뿐, ‘조사 개시’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는 것이다.검찰 일각에서는 수사팀 검사들이 이 지검장에게 보고한 시점과 이 지검장이 대검에 보고한 시점 사이에 공백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 지검장에게 항의하고 오찬 제안도 거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부부장 검사가 사의를 표한 상황 등을 고려해 오찬이 연기된 것이고 수사팀이 지검장 등에게 불만을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이후민·정선형 기
해리스 돌풍에 놀란 트럼프… “미치광이, 무능” 맹공
해리스 돌풍에 놀란 트럼프… “미치광이, 무능” 맹공 워싱턴=김남석 특파원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급진 좌파 미치광이(lunatic)’ ‘역사상 가장 무능한 부통령’ 등의 표현을 동원해 맹공격을 퍼부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 후 해리스 부통령이 하루 만에 대선 후보 자리를 굳히고 선거 판세를 뒤흔들자 트럼프 전 대통령 측과 공화당은 후보 교체 과정 및 선거자금 이전 등을 문제 삼으며 ‘해리스 돌풍’ 잠재우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이번 대선 핵심 경합주 가운데 하나인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가진 선거 유세에서 무대 등장과 동시에 해리스 부통령을 겨냥해 “카멀라 해리스는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극좌파인 부통령”이라며 “여론조사에서 그는 역대 최악의 부통령으로 평가됐다. 그런 여론조사는 처음 보지만 그게 여론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카멀라는 미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선출직 정치인이다. 정말 끔찍하다”며 “알다시피 그는 버니 샌더스(상원의원)보다 더 급진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유세는 지난 21일 바이든 대통령 대선 후보 사퇴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처음 대중 앞에 선 행사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히 바이든 행정부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맡았던 이민·국경정책에 대해 집중공세를 펼쳤다. 그는 “국경 차르(황제) 카멀라는 국경을 개방해 전 세계에서 2000만 명의 불법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밀려들도록 허용했다”며 “그는 국경을 담당했지만 국경에 간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방송인 시절 유행어를 사용해 “카멀라, 넌 해고야. 여기서 나가”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민주당 후보 교체 과정과 선거자금 이전 등을 문제 삼아 해리스 부통령 흠집 내기에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SNS를 통해 “그(바이든 대통령)는 개처럼 권력에서 밀려났다. 급진 좌파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라”고 후보 교체를 문제 삼았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민주당은 조 바이든을 대선 후보로 선택한 1400만 명 넘는 미국인의 표를 무효화해 자신들이 자칭하는 민주주의 정당의 정반대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캠프 법률고문 데이비드 워링턴은 “카멀라 해리스가 조 바이든이 남긴 선거자금 9150만 달러(약 1265억 원) 강탈을 꾀하고 있다”며 연방선거위원회(FEC)에 고발장을 제출했다.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과의 TV 토론 필요성을 밝힌 가운데 보수 성향 폭스뉴스는 이날 양측 선거캠프에 9월 17일에 토론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냈다. 폭스뉴스는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앵커 브렛 베이어·마사 맥칼럼의 사회로 대선 토론을 하자고 밝혔다. 아직 양측 답변은 없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서 바이든 대통령 측과 합의했던 ABC뉴스 주최 TV 토론 대신 폭스뉴스가 토론을 주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어 승낙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수직갱도·까치발 건물… 폐광서 태어난 ‘레트로’
수직갱도·까치발 건물… 폐광서 태어난 ‘레트로’ 정선·태백·삼척=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탄광이 ‘역사’가 되는 걸 목격하다우리나라 최대 규모 석탄생산지인 강원 태백의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지난 6월 30일 문을 닫았다. 장성광업소는 한때 탄광 근로자만 6000명이 넘었을 정도로 번성했던 탄광이었다. 전성기에 이곳에서만 한 해 227만5000t의 석탄을 캤다. 국내 탄광 중 연간 최대 석탄 생산기록이다.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탄을 캤던 근로자는 460여 명. 그들마저 다 떠난 장성광업소 입구에 광업소장 명의의 이런 펼침막이 걸려있었다. “지나온 세월보다 더욱 행복한 앞날을 기원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전국의 석탄광산은 딱 두 곳만 남았다. 그중 한 곳이 강원 삼척의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인데, 여기도 2025년 문을 닫기로 예정돼 있다. 도계광업소가 폐광하면 공기업 대한석탄공사도 폐업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남는 건 민영 탄광인 도계의 경동 상동광업소, 딱 한 곳이다. 여기도 문을 닫는 건 기정사실이다. 변수는 채산성이 아니라, 폐광을 전제로 한 보상이나 지원에 대한 정부와 회사 간 합의다.경동탄광까지 문을 닫고 나면 우리나라의 석탄생산은 완전히 끝나게 된다. 이 땅에서 탄광개발이 시작된 지 120여 년 만의 일이다. 탄광이 사라지면 석탄산업은 이제 ‘역사’가 된다. 좀 거창하게 말한다면, 지금 장성광업소 폐광을 지켜보는 이들은 석탄산업이 저물어 역사가 되는 걸 목격하고 있는 세대다. 이제부터는 그 자취를 보러 가는 여정의 얘기다. 탄광촌 이야기라면 지루할 것이라 지레짐작하기 쉽다. 칙칙하고 우울한 공간이 여행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건 선입견이다. 폐광된 탄광에는 공간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다른 공간으로 절대 대체될 수 없는 탄광만의 분위기다. 역동적이면서 어쩐지 그로테스크하기도 하고, 연민의 느낌과 비애감까지 살짝 깔려있다. 단순히 ‘레트로’란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복잡한 감상이다. 레트로를 표방하는 여행지에서 보는 건 대개 ‘공간에 깃든 시간’이다. 하지만 문 닫은 탄광과 쓰러져가는 탄광촌의 자취에서는 더불어 ‘거기 살았던 사람들의 체온’까지 느껴진다. 사람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한 법인데, 탄광촌에는 그런 얘기를 잘 다룬 공간이 많다. 탄광촌 여행이 재미있는 이유다. 문 닫은 탄광의 적요한 공간을 미술로 메운 미술관에서도, 탄광촌 천변에 기둥을 세워 지은 ‘까치발’ 건물을 옛 탄광촌 전시장으로 꾸민 공간에서도, 주인공은 늘 사람이다. 빛 한 줌 새어들지 않는 지하 막장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가족을 건사했던 가장들의 뭉클한 삶이라니. 오래된 추억을 뒤적이다가 때로는 가슴 뭉클해지거나 아련해지곤 하는 이 기분을, 여행이 아니라면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탄광촌에 가면 왜 미안해지는가탄광촌에 가면 부채의식이 느껴진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 1960∼1970년대는 물론이고, 1980년대까지도 그랬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은 고되고 또 고됐다. 탄광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봉제공장도 그랬고, 건설현장도 그랬고, 새벽시장도 그랬다. 그 시절 모든 일터에서는 야근과 특근과 잔업이 일상처럼 이어졌다. 하루도 쉬지 못하는 ‘주 7일 근무’도 드물지 않았다. 압축성장의 근대화 과정에서 기초를 떠받치던 모든 혹독했던 노동은, 좀 자극적으로 표현하자면 ‘뼈를 갈아 넣는’ 일이었다. 되돌아보면 지금의 풍요로운 삶은, 그때의 고된 노동에 일정 부분 빚지고 있다.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건, 뭐라 잘 설명할 수 없는 부채의식이 탄광 앞에서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건설현장에서도, 오래된 공장에서도 그런 느낌은 없는데, 탄광촌이나 탄광의 흔적 앞에 서면 가슴속에 추가 매달린 양, 마음이 무거워진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 대한 안쓰러움, 거기다 미안함을 ‘반 스푼’쯤 섞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왜 그럴까. 고된 노동의 ‘산업 역군’은 다른 곳에도 많았는데, 유독 광부들에게만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정선과 태백, 도계의 탄광촌을 찾아다니며 한때 광부였던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해를 보지 못하는 깜깜한 곳에서 일해서’라는 답도 있었고, ‘빈번한 탄광 사고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어서’라는 대답도 있었다. 대답은 저마다 다 달랐는데, 어느 것도 흔쾌한 정답이라 하기 어려웠다. 정답이 없으니, 나름대로 짐작을 말할 수 있겠다. 탄광마을의 자취를 둘러보고 얻은 결론(아니 확신할 수 없으니까 ‘잠재적 결론’이라 할 수 있겠다)은 이거다. ‘그 시절 탄광은 다른 어떤 곳보다 더 불평등했다’는 것. 탄광이 차별받기도 했지만, 더 치명적이었던 건 ‘탄광 안에서’ 광부들끼리도 불평등했다는 점이다. 뒷배가 없고 배우지 못했으면 광산사고로 죽은 뒤에도 보상금조차 차별받았다. 안전장치 미비와 허술한 보안관리로 인한 사고로 다쳐도 스스로 ‘자기 책임’임을 진술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지금 느끼는 불편함은 그 시절 불평등에 대한 부채의식이 아닌가 싶다. 그게 직접적인 ‘우리’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강원랜드가 거기에 있는 이유강원 정선 사북읍에서 강원랜드로 올라가는 고갯길 초입에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있었다. 지금은 ‘강원랜드 아래’ 사북광업소가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그때는 ‘사북광업소 위에’ 강원랜드가 들어선다고 했다.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강원랜드가 사북읍과 고한읍의 경계쯤에 들어섰던 건, 국내 최대 탄광으로 쌍벽을 이루던 두 개의 탄광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사북읍에 국내 최대 탄광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있었다면, 고한읍에는 이와 쌍벽을 이뤘던 라이벌 삼척탄좌 정암광업소가 있었다. 애초에 탄광으로 생겨나서 탄광으로 먹고살았던 사북과 고한은, 폐광과 동시에 그야말로 ‘단번에 숨통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그런 사북과 고한에 폐광지역 경기 활성화를 위한 카지노 리조트 강원랜드가 들어선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북광업소는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2004년 10월 31일 문을 닫았다. 광업소는 폐광 직전 출범한 광부와 시민들로 구성된 석탄유물보존위원회에 의해 소규모 ‘탄광문화관광촌’으로 운영되다가, 지금은 강원랜드가 인수해 ‘탄광문화공원’으로 꾸미고 있다. 내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강원랜드는 최근 새 호텔신축, 웰니스센터 조성, 호텔과 콘도를 연결하는 스카이브리지 건립, 복합문화공간 조성 등을 골자로 한 글로벌 복합리조트 도약을 위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사북광업소 자리에 조성하고 있는 탄광문화공원이다. 탄광 얘기를 시작하면서 개관은커녕 공사도 끝나지 않은 탄광문화공원 얘기를 먼저 꺼낸 건, ‘역사가 된’ 탄광산업을 이곳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사북광업소는 규모와 석탄 생산량 면에서도 그렇지만, 광산의 상징적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1980년 정치적 격변기에 일어났던 이른바 ‘사북사태’를 기억하시는지.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여기, 강원랜드가 탄광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다.사북사태는 비상계엄 아래 민주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광산노조의 어용 시비와 함께 노조활동을 감시하고 억압하던 경찰과 광산노동자의 갈등까지 곪아 터지면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결국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을 입는 유혈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노·사·정 대표의 합의로 사태는 일단락됐으나 사건 직후 계엄사 산하 합수부는 이 사건을 ‘광부난동사건’으로 규정하고, 주모자를 폭도로 몰아 구속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와 가혹 행위 국가의 사과를 권했으며, 2015년에는 법원이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의 주모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 자취와 기록이 사북광업소에 고스란히 다 남아있다. # 사북광업소, 박물관이 되다 탄광문화공원은 이제 겨우 건물만 완공됐을 뿐이다. 건물은 사북광업소의 시설물 등을 그대로 두고 그 위를 덮는 방식으로 지었다. 사무실부터 목욕탕까지 광부들이 사용했던 내부공간을 고스란히 보존했다. 사북광업소 시절의 설비도 그대로이고, 자료도 다 보관돼 있다. 그럴 수 있었던 데는 한 사람의 역할이 컸다. 당시 광업소 하청업체였던 원창기업의 송계호 대표다. 정선군의회 의장을 역임했던 그는 폐광을 한 해 앞두고, 직원들을 설득해 함께 흩어진 탄광의 유물들을 모으고 지켰다. 다들 폐광에 따른 생존권 투쟁에 매달릴 때도, 송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자칫 흩어질 수 있었던 사북광업소 자료를 모았다. 크고 작은 장비는 물론이고, 작은 팻말이나 서류 한 장까지도 다 모았다. 제 것도 아니면서, 제 것보다 더 소중하게 다뤘다. 입버릇처럼 그는 ‘여기 있는 모든 것이 다 역사이고, 보물’이라고 했다. 어떻게 지금까지 남겨놓을 수 있었을까 싶었던 게 사북광업소 광부들을 실어나르던 통근버스였다. 통근버스는 두 대인데 대형버스는 광부들이 많이 사는 광산 주변을 다녔고, 중형버스는 광산에서 먼 곳까지 운행하던 것이었다고 했다. 이제는 오래돼서 붉게 녹슬어 금세 주저앉을 것 같지만, 이 버스도 한때는 광산촌의 고갯길을 힘차게 넘어다니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공사장은 출입이 통제되지만, 울타리 바깥에서도 세워둔 통근버스를 볼 수 있다. 유물 보관창고로 쓰고 있는 공사장 옆 컨테이너 부스 안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차곡차곡 쌓아놓은 여러 개의 찌그러진 양은 도시락이었다. 광부들은 탄광 작업장에 한번 들어가면 일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서 갱도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면 지하 막장 휴게소에서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었다. 언제 죽어 나갈지 모르는 갱도 안에서 먹는 밥이라고 해서 광부들은 도시락 점심을 ‘사지(死地)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먹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탄광촌에서 광부들의 대표 음식은 단연 삼겹살과 돼지껍데기였다. 탄가루를 마셔야 했던 광부들은 목의 탄가루를 씻어낸다며 비계가 잔뜩 붙은 삼겹살과 돼지껍데기 구이를 먹었다. 편평한 돌을 불판 삼아 구워 먹었다고 해서 광부들은 삼겹살을 ‘돌구이’라고 불렀다. 돼지고기가 거의 필수품에 가까운 부식이어서 탄광 사택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회사에서 돼지고기를 일괄 공급해주고 월급에서 ‘고기 값’을 제하기도 했다. 쌀도 회사에서 나눠줬다. 탄광촌에는 ‘석공쌀’이라는 게 있었다. 대한석탄공사가 품질 좋은 쌀을 대량으로 구매해 싸게 공급하는 쌀이다. 민영 탄광에서도 광부들에게 월급 대신 주던 쌀이 있었는데, 그건 ‘광산미(米)’라 부르던 질 낮은 값싼 쌀이었다. 탄광촌에는 불평등한 취급을 당할 때면 ‘석공쌀’과 ‘광산미’를 빗대 말하기도 했단다. 탄광촌에서는 작은 물건 하나로도 추억의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아직 유물 전시의 주제나 방식 등에 대해서는 결정된 게 없지만, 탄광문화공원이 완공되면 전시장에서 탄광촌의 이런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 탄광촌까지 스며들었던 지역감정 이번에는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얘기다. 정암광업소는 인근 사북광업소와 그야말로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다. 당시 광부들은 두 광업소가 ‘영호남 대결구도’라고 믿었다. 정치권에서 획책한 지역감정 구도가 이 깊은 탄광마을까지 비집고 들어왔던 것이다. 1980년대까지 사북·고한지역에서는 동원탄좌가 전라도 기업이고, 삼척탄좌는 경상도 기업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돌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였다. 동원탄좌의 설립자 이연 회장은 전북 익산 출신이니 동원탄좌는 전라도 기업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삼척탄좌 설립자는 충북 청원 출신인 대한생명 설립자 임창호다. 1970년 삼척탄좌를 인수한 ‘삼천리연탄기업사’의 공동창립자 이장균, 유연성은 둘 다 함경남도 함주 출신이었다.그런데도 삼척탄좌를 경상도 기업이라 여겼던 건, 삼척탄좌의 실소유주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헛소문 때문이었다. 탄광촌 주민들은 영세기업이던 삼천리연탄이 자기보다 수십 배나 큰 삼척탄좌를 인수한 데 박 전 대통령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이런 데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두 번이나 삼척탄좌를 방문했으니 오해는 더 깊어졌다. 사북사태 이후 광산업자들은 사태 재발 방지뿐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봐서라도 복지에 신경 쓰고 있다는 시늉을 해야만 했다. 당시 광산에서는 한 달 동안 결근 없이 만근한 근로자들에게 돼지고기를 나눠줬는데, 사북광업소에서 두 근을 주면 정암광업소에서 세 근을 주는 식으로 경쟁했다. 정암광업소는 1975년 삼척 맹방해변의 군용시설을 임대, 하계휴양소를 개설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보다 늦은 1981년 강릉 경포대에 휴양소를 설치한 사북광업소는 여름휴가 때마다 하계 휴양 열차를 대절해 공짜로 태워주기도 했다. # 예술로 폐광을 지키다정암광업소는 사북광업소보다 3년 앞선 2001년 10월 31일 폐광했다. 문 닫은 광산은 대책 없이 방치됐다가 창조적 문화예술단지로 거듭났다. 지난 2013년 정암광업소는 문화예술복합공간인 ‘삼탄아트마인’으로 다시 문을 연 것. ‘삼탄’은 삼척탄좌를 뜻하고, ‘아트(ART·예술)’와 ‘마인(MINE·광산)’을 조합한 이름이다. ‘공간 재생’이란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절, 전적으로 개인의 힘으로 이뤄진 혁신적인 시도였다. 삼탄아트마인은 정암광업소 건물과 시설을 활용해 레일뮤지엄과 현대미술관, 아트 레지던시, 체험관 등으로 리모델링해 운용하고 있다. 광부들이 생활하던 공간에다 들여놓은 미술관과 전시장도 인상적이지만, 삼탄아트마인의 하이라이트는 수직갱과 권양기가 있는 조차장 구역을 다듬어 만든 ‘레일 바이 뮤지엄’이다. 여기서는 탄가루로 뒤덮인 수직갱의 철 구조물과 강철 로프, 가동을 멈춘 컨베이어 벨트 등이 하나의 압도적인 조형예술작품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삼탄아트마인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이곳이 돈벌이의 욕심이 아니라 소명의식 하나로 문 닫은 광산을 꿋꿋하게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지고 흩어질 뻔했던 산업 유산을 지켜온 것만 해도 대견한데, 그걸 넘어서 초기의 어려움을 이기고 공간을 새롭고 창의적으로 해석하며 좋은 미술 전시를 지치지 않고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삼탄아트마인이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건 노동하는 이들의 고된 삶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폐광에 차곡차곡 쌓인 치열했던 삶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훌륭한 질료다. 꼭 다녀오길 권하는 첫 번째 장소가 삼탄아트마인이라면, 두 번째는 태백 철암역 앞의 ‘철암탄광역사촌’이다. 여기는 옛 탄광촌 상업시설을 복원해 보존한 생활사 박물관이다. 바닥 면적을 최대한 늘리려 한껏 뒤로 밀어 천변에 기둥을 세워 ‘까치발 건물’로 불리는 쇠락한 건물 11개 가운데 6개를 전시 공간으로 꾸며 조성했다. 폐업한 상점의 업소간판과 실내공간을 그대로 두어서 그 앞을 걷는 것만으로도 타임머신을 타고 30∼40년 전쯤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 시절의 대폿집이나 판잣집, 탄광촌 골목 등을 재현해놓기도 했다.# 그들의 죽음을 다시 호명하자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태백의 황지에는 순직산업전사위령탑이 있다. 탄광 사고로 사망한 광부들을 추념하는 탑이다. 이곳에 광부 4118위가 모셔져 있다. 믿어지는가. 베트남 전쟁 9년 동안 참전한 국군 전사자가 5099명인데, 탄광에서 일하다 굴이 무너지거나 화약 사고 등으로 죽은 사람이 4118명이나 된다는 것을. 진폐증이나 탄광 노동의 간접 피해로 죽은 이를 뺀 숫자가 이렇다. 1975년 한 해에만 광산에서 270명이 사망했다. 그저 광산에 석탄을 캐러 들어갔던 이들이 이처럼 일상적으로 떼죽음을 당했던 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광부들은 부실한 안전시설의 열악한 갱도에서 목표량과 책임생산량 달성으로 내몰렸다. 한쪽 갱도에서 사고가 나서 주검을 수습하는 동안, 다른 갱도에서는 생산량 달성을 위한 채탄작업이 진행됐을 정도였다. ‘먹고사는 일’이 다급했던 시절. 산 사람은 살아야 했고, 그저 죽은 이들만 억울했다.태백은 사방이 고개다. 싸리재, 송이재, 연화재, 백산…. 그 고갯마루마다 화장장이 있었다고 했다. 죽은 광부들은 여기서 화장해 뼛가루가 돼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광산사고 희생자 4118명 가운데 상당수의 신원이 유실됐다. 후손에 의해 정확한 신원이 파악된 경우는 전체 사망자의 20%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나이도, 주소도 없이 위패에 이름 석 자로만 남아있다. 사정이 이러니 동명이인을 가려낼 수조차 없다. 더 기막힌 건, 사고로 세상을 뜬 광부 중에는 적잖은 ‘의사자(義死者)’가 있는데도, 누구도 그걸 가려내지 않았다는 것이다.탄광 매몰 사고가 발생하면, 구조작업의 맨 앞에는 대부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섰다. 갱도 내부의 지리와 탄광의 특수성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의무가 아니니 위험한 사고현장을 외면했을 법도 하지만, 생사를 함께했던 동료가 갱 속에 매몰됐다는데 그걸 모른 척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구조작업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광부들은 모두 단순 ‘광산 사고 사망자’로 처리됐다. 타인을 위한 의로운 죽음이었지만, 탄광에서는 그저 ‘개죽음’일 따름이었다. 석탄산업이 종언을 고하고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압축성장의 그늘 속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새삼 다시 기리고, 그들의 죽음을 걸맞은 예우로 다시 호명해야 하지 않을까. 순직산업전사위령탑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봐야 하지 않을까. 위령탑 앞에서 내려다본 태백 시내가 온통 황혼으로 물들고 있었다.■ 탄광촌의 카페 두 곳오래전부터 예고됐던 폐광이어서 그랬을까.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았는데도 장성동은 평온했다. 장성동은 최근 도시재생 뉴딜 사업으로 몰라보게 달라졌다. 1978년 지은 낡은 화광아파트를 철거한 자리에, 임대아파트와 수영장까지 갖춘 복합문화센터가 들어섰다. 장성중앙시장 주변은 30∼40년 전 탄광촌 모습 그대로다. 동네가 다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마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화신촌 믹스카페’가 있고, 산동네 교회 자리에 카페 ‘로드앤드’가 있
“‘말병’ 걸린 사회… 말하는 자들만 있고 듣는 자는 없어”
“‘말병’ 걸린 사회… 말하는 자들만 있고 듣는 자는 없어” “우리 사회의 병은 ‘듣기’가 안 된다는 겁니다.” 소설가 김훈(76)이 24일 저녁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한국 사회를 냉엄하게 진단했다. “말하는 자들만 있고 듣는 자가 없으니 인간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담벼락에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쓴소리했다.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가 드문 김 작가는 이날 300여 명의 관객들 앞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안 믿는 세상에서 말을 하면 할수록 인간 사이는 단절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파괴된 관계’ 때문에 “민주주의도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를 향해서도 비판의 말을 이어갔다. “다들 ‘말병’이 걸린 것 같다. 악다구니와 저주와 욕설이 가득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말병’의 치료법, 즉 듣지 않는 사회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듣기의 바탕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정치·사회적 견해를 교양 있는 언어로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요.” 상대방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자신도 상대방이 잘 들을 수 있도록 교양있는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최근 노년의 일상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산문집 ‘허송세월’(나남)을 펴낸 김 작가는 읽고 쓰는 삶에 대한 소회도 풀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한 독자의 질문에 “솔직히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책을 읽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회의 사건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어야 한다”면서 “사고와 참사를 마주하고 인생에 대해 생각하며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작가는 평소 법전과 연구서, 연암 박지원의 글을 자주 읽는다면서 “현실에 발 딛고 있는 글이 좋다”며 웃었다. 소통 부족 사회와 현실 정치를 비판하면서도 김 작가는 이날 북토크 현장을 내내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특히, 그가 요즘 ‘밥’과 ‘똥’과 같은 명사에 흥미를 느끼고, ‘먹다’와 ‘싸다’와 같은 동사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자 박장대소가 터졌다. 그는 “사람들이 밥은 가장 좋아하면서 똥은 가장 혐오한다”면서 “먹고 싸는 행위가 하나로 연결돼있는 인간이 참 재밌지 않냐”고 반문했다. “고층 빌딩을 보면 똥이 거대한 통로로 모여 바다를 이루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생각도 허송세월하는 것이죠.” 김 작가의 신간 ‘허송세월’은 현재 주요 서점 에세이 분야 1위에 올라있다.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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