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6)제주도의 석상과 석탑

제주도는 돌의 나라, 신화의 나라다. 돌하르방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돌하르방의 이미지는 다분히 현대에 만들어진 신화다. 제주도에 남아있는 돌하르방 수십기 가운데 한 두개의 모습만 관광상품화되면서 나머지는 가리워져버리고 만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오히려 더 토속적이라고 한다면 제주도의 진면목은 유명해진 돌하르방의 모습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하르방은 제주도 방언으로 할아버지의 낮춤말이다. 어떤 책은 신격으로서의 권위가 허물어지면서 업신여기는 이름이 붙여진 게 아닌가 보고 있다. 여기에 즉각 반론이 따를 수 있다.


한국사람들이 신을 대하는 태도가 원래 두려움과 허물없음이라는 이중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멍청이 벅수(장승)야 라고 하듯이 장승을 멍청이에 비유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돌하르방이라고 불리운 건 해방 이후부터라고 하니 이름부터 뿌리가 그다지 깊지 않다. 그전에는 제주시에서는 우석(성)목, 대정읍에서는 무석(성)목, 성읍리에서는 무석(성)목이나 벅수머리라고 불리었다.

지식층들은 옹중석(석상)이란 한자말을 즐겨 썼다. 또 부녀자들 사이에서는 미륵으로 부르기도 했던 모양이다. 뭍에서 마을 어귀에 세워진 석상이나 입석을 두루뭉수리로 미륵이라 칭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하는 것 자체가 돌하르방의 진짜 모습이다.

이번 답사는 돌 조형물의 갖가지 표정을 훑어보면서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의 구멍을 통해 속내를 들여다보고 때로는 단단한 신화를 깨는 것이 목표다. 답사 일행은 문무병(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주강현(문화재 전문위원) 박경훈(화가·도서출판 각 대표) 김영훈(탐라미술인협의회 간사) 이기복(고려대 대학원)이다. 멤버가 화려하다보면 답사는 시큰둥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동안 제주도를 답사해온 민속연구자들이 없었다면 외진 숲속의 그 많은 돌 조형물을 찾아가는 것조차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봉고차 문이 열리면 무거운 사진장비를 둘러메고 우루루 쏟아져나온다. 엉겅퀴 가시가 찔러대는 풀숲을 헤매다 오래된 무덤가에서 팔뚝 길이만한 동자석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른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있었다는 동자석이 도굴된 걸 확인하는 순간은 섬찝하기까지 하다. 이 슬픈 돌아이는 일본에 비싼 값으로 팔려 입양되고 있다. 답사 일행이 첫번째 만난 것은 제주시 용담동이 있는 복신미륵(서자복)이다. 절집 뜨락에 모셔져 있는 이 석상은 키 2.73m로 훤칠하다.

예전에 산비탈에 집이 들어서지 않았을 때는 건입동 복신미륵(동자복)과 마주서 있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한 쌍의 미륵이 산지항으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 제주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미륵의 지킴이 역할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는 장승이나 돌하르방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두 미륵은 새로 돌하루방 모자를 만들어 쓴 것일까. 모자를 벗는다면 덩치만 컸지 가슴에 모은 손, 삼각형 코, 작은 입 등은 동자석의 생김새와 차이가 없다. 그리고 돌하르방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진 퉁망울 석상이 아닌 성읍이나 대정의 돌하르방들이 미륵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는데 주의를 요한다. 이 미륵의 얼굴을 제주도 석상의 전형으로 삼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건입동 미륵은 키가 2.86미터로 조금 더 크다. 앞장 선 문무병씨가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 어느 집으로 쑥 들어가니 담을 두른 좁은 공간에 동미륵은 서 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하는 식으로 한쌍의 석상에는 음양이 나누어져 있는데 남자들이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동미륵을 여인상으로 보기도 하고 반론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반론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서미륵이 더 여인상에 가까운 건 한눈에 알 수 있다. 우선 동미륵보다 배가 불러 있다. 동자석을 보면 배가 튀어나오게 하여 음양을 구분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동미륵의 배 돌출은 또 다른 동자석들이 그렇듯이 팔 모양을 양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정말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동미륵의 늘어진 옷고름이다. 그건 마치 여성의 그것처럼 보인다. 과문한 탓인지 아직 옷고름으로 성을 구분하는 관찰은 보지 못했다. 너무 작위적인 해석일까. 아니다. 제주대 강당 앞에 있는 동자석들 가운데 몇쌍이 옷고름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새겨놓은 것을 보면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풍요을 염원하며 해학적으로 그려진 성기의 상징은 건강한 에로티즘을 발산하고 있다. 음양의 기호들을 보지 않고서는 석상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 음양의 논리로 봐도 서쪽은 음이므로 서미륵은 여성이다. 어차피 미륵은 기자석이다. 서미륵 옆에는 건장한 남자의 그것이 돌의 모양을 빌어 발기되어 있다. 아들을 낳기를 빌면서 여인네들은 그 기묘한 돌미륵에 걸터앉는다.

제주공항 근처 도두2동 몰래물에는 방사탑이 2기가 있다. 방사탑은 밥사발 엎어놓은 것처럼 둥글게 쌓아올린 돌탑이다. 어떤 방위가 불길하거나 허할 때 두 개씩 대칭으로 세운다. 육지에서는 솟대와 돌무더기, 때로는 장승이 함께 어우러져 마을 어귀의 신전으로 꾸며지는데 제주도에서는 방사탑으로 압축해서 표현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육지에서도 돌무더기에 솟대를 꽂거나 방사탑처럼 쌓은 돌무더기가 보여 서로의 영향관계가 어떤지 흥미롭다. 솟대는 긴 장대 위에 목각오리를 올려놓지만 방사탑에는 까마귀나 돌하르방같은 조형물을 올려놓는다. 몰래몰 방사탑에는 새가 올려져 있다. 밭을 둘러싼 돌담과 연결되어 있고 흡사 젖무덤처럼 꼭대기를 둥글게 쌓아 새가 젖꼭지처럼 보이는 게 특이하다.

봉고차는 서쪽으로 계속 달려 애월읍 하귀2리 돌코릿당 앞에서 멈춘다. 우리가 신당을 찾는 이유는 석상이나 석탑과 마찬가지로 제주도 사람들의 꿈이 깃든 돌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신당 얘기는 다른 곳을 들리며 차차 논의하기로 하고 부리나케 사진만 찍고 떠난다.

돌코릿당을 빠져나오다 근처에 묘지가 있어 들린다. 제주도 묘지는 주로 들판에 있고 사방으로 돌을 쌓아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대개 좌우로 2기씩 망주석과 동자석을 세우는데 여유 있는 집에서는 장군석을 함께 세우기도 한다. 이 묘지에는 망주석과 동자석이 1기씩만 남아있다. 동자석은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무덤을 지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과연 그것 뿐일까. 여기 동자석은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있고 코는 완전히 없어진 상태다. 오래된 동자석치고 성한 코를 가진 것은 없다. 코를 갈아서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 때문이다. 결국 동자석은 기자석이거나 남근석이기도 한 셈이다.

제주도청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정실마을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참 숲속으로 들어가니 옛무덤이 여러 기가 몰려 있다. 현감을 지낸 고씨의 가족묘지다. 현감 고씨 무덤 앞에 있는 동자석은 희미하게 얼굴 윤곽만 남아 있지만 동그란 눈과 수더분한 표정이 성읍의 돌하르방과 닮아 있다.

부인 고부이씨 무덤의 동자석은 2기 모두 배가 불룩한 것이 용담동 서미륵을 빼닮았다. 한 무덤을 건너서 가니 흉상처럼 생긴 키 작은 동자석이 있었는데 얼굴에 석화가 잔뜩 피어 있었다.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무덤에서도 석화가 피어 온몸에 털이 난 것 같은 동자석을 볼 수 있었는데 왜 동자석을 돌코냉이(돌고양이)로 부르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옆 무덤에는 신기하게도 전혀 석화가 피지 않은 동자석이 있었다. 20여년전에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모양은 똑같은데도 옛 동자석의 맛이 나지 않았다. 석화 때문만은 아니다. 순진무구하거나 무작위한 맛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무덤가에서 본 망주석은 귀두에 띠를 두르거나 장식을 바꿔 눈가림 했을 뿐 영락없는 남근석이다.

선사시대 무덤에 세워져 있던 선돌도 떠난 자의 재생을 비는 남근석이었다. 무덤을 지키라고 세워둔 망주석의 본능은 남근이다. 선돌은 망주석을 낳고, 망주석은 동자석을 낳고, 동자석은 코를 갈아 제주도 사람을 낳은 것일까.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동자석을 닮은 것일까. 제주대로 가는 길가 숲 속에서는 도채비꽃이 점점 신비스러운 빛을 띠어가고 있었다.
-다음회에 계속

<글·사진 / 오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