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15-부천시 장말 도당굿>외다리장수 부채바람에 복이 ‘살랑’

날이 어두워지면서 굿청에는 마을 할머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낮에는 김수남씨 사진집 경기도 도당굿을 옆구리에 끼고 있거나 비디오를 촬영하는 대학생들만이 굿을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소반 위에 흰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저마다 준비해온 쌀을 부었다. 이것을 꽃반이라고 한다.

장한갑 노인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 깨끼 두루마기를 걸치고 양손에 부채와 수건을 들고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신이 내리기를 기다린다. 120년이 넘어 너덜너덜해진 신복을 입고 스스로 신이 된 장노인은 이윽고 부채를 꽃반 위에 세운다. 주민들에게 복을 나눠주는 것이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고 복은 바람에 실려온다. 부채가 펼쳐진 채 꽃반 위에 서자 할머니들은 좋아라 박수를 친다.

11월 5일(음력 10월 10일) 부천시 원미구 중동 장말(장씨마을)에서 본 도당굿의 한 장면이다. 장 노인은 박수무당이 아니다. 도당 할아버지라고 불리우며 세습무와 마찬가지로 대물림을 한다.

특별히 존경 받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다른 마을굿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다. 무당이 집집마다 유가를 돌 때 신목을 들고 다니는 대잡이가 있는데 신이 내린다던가 굿을 리드해가는 게 도당 할아버지와 비슷하다. 그러나 도당 할아버지는 같은 성씨가 많은 동네에서 뽑히고 굿을 일일이 지시하는 등 카리스마가 있는 점이 다르다.

강신무가 아닌 보통 사람에게 과연 신이 내리는 것인지 연극적인 트릭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 날 장 노인은 범상치 않은 행동을 보여주곤 했다. 꽃반에 부채를 세우던 노인이 갑자기 부채를 계속 쓰러뜨리기만 하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초조한 표정이면서도 85세나 되어 연로해서 그러겠거니 했다.

그러던 노인이 돌연 도당할아버지 후계자인 조카 장현수씨에게 부채를 넘겼다. 그런데 조카 장씨가 부채를 잡으니 던지는 족족 서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들은 박수를 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장노인이 실수를 되풀이 한 건 조카에게 도당할아버지 자리를 물려주는 일종의 내림굿을 벌이기 위한 트릭이 아니었을까.
원래 부채 세우기를 하면서 도당할아버지는 다리 하나를 들고 깨끔춤을 추게 되어 있다. 한 걸음도 떼기 힘든 장노인이 외다리춤을 추기는 무리다. 하지만 조카 장씨는 깨끔춤을 출 수 있었다. 장씨의 춤은 무격의 춤을 포함하여 이날 보여준 춤 가운데 가장 격렬한 춤이었다.

도당할아버지는 왜 외다리춤을 추는 것일까. 그것은 도당신이 외다리이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이 마을 출신인 장씨 장수가 왜군의 덫에 걸려 장수와 말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 장씨 장수가 도당신이 되었으니 도당신은 조상신이기도 한 셈이다.

놀라운 것은 84년 도시계획으로 도당집이 헐리고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일제시대 때 쇠말을 묻었다는 구전에 따라 땅을 파보니 진짜로 다리 하나가 부러진 쇠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쇠말은 전설에 따라 제작된 신상인 것일까. 학자들도 쇠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인용할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당집에 다리 하나가 없는 쇠말을 모시는 습속은 비교적 널리 퍼져있음을 볼 때 쇠말이 먼저 있고 전설은 나중에 지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집에 다리 하나 없는 쇠말을 모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쇠말을 모시는 지역의 주민들 얘기로는 마을신이 타고 갈 말이라고도 하고 호랑이의 침입을 막아주는 신이라고도 한다. 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은 호랑이에게 물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 여기서 호랑이를 왜군으로 바꾸면 바로 장말 도당신의 유래가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말이건 장수이건 왜 다리 하나가 없는데 신으로 모셨나 하는 궁금증을 푸는 것이다. 엘리아데의 샤마니즘이란 책을 보면 악마가 다리가 세 개인 말을 타고 동방으로 가는 야쿠트 신화가 나온다.

다리가 세 개인 말만이 악마를 실어나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비교적 선악 구분이 애매한 무속에서는 불구를 조롱하는 것도 서슴지 않지만 불구가 정상보다 신통력이 더 뛰어난 것으로 여기고 있다.

현실에서는 비정상이 신의 세계에서는 정상이다. 그래서일까. 경기도 세습무들의 은어도 뒤집어서 비정상으로 만든 것이 많다. 이를테면 무녀를 미지라고 하는데 이 말은 지에미를 뒤집은 말로 추정된다. 이제는 전통적인 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장말 도당굿에 참가한 기능보유자 오수복씨도 원래는 강신무인데 나중에 기능을 습득했다고 한다. 경기도 도당굿은 세습무인 화랭이(남자무당)가 주무이다. 제주도에서도 남자인 심방이 굿을 주재하기는 하지만 경기도의 경우는 아무래도 남성중심의 유교문화 세례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박수무당이 주도권을 행사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1990년 경기도 도당굿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화랭이 조한춘이 오수복씨와 함께 기능보유자로 지정된다. 그 뒤로 장말 도당굿이 매년 열리고 있어 마치 대대로 전승된 것 같지만 사실은 60년대 이후 맥이 끊겼던 것을 되살려놓은 것이다. 김수남씨 사진집에 나오는 장말 도당굿은 80년대초 한 두번 부활되었을 때의 기록이다.

그 책을 보면 돌팡구지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 윗당으로 신을 모시러가면서 굿이 시작된다. 돌팡구지 위에는 고인돌의 성혈처럼 보이는 간장 종지만한 작은 구멍이 있다. 전설에는 장수가 오줌을 눈 자리라고 한다. 그 돌팡구지는 지금의 도당집 마당에 옮겨놓았기 때문에 도당할아버지가 신복을 입고 그 앞에 가서 춤을 추고 절을 한 다음 도당신을 모셔온다.

그리고 나서 부정굿을 하고 돌돌이를 돈다. 돌돌이란 화랭이가 동방청제장군 등이 쓰여진 깃발을 앞세우고 마을 공동우물이나 동서남북에 새로 세운 장승 앞에 가서 고사를 지내고 축원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집을 보면 장승이 서 있는 곳은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다. 사진집에 정정하게 나오는 조한춘 화랭이는 90년대 초에 작고했고 아들 조영국씨가 뒤를 잇고 있다. 장승에 가까이 다가가면 마을 아이들은 기다란 수숫대로 화랭이를 마구 찌른다. 잡귀를 쫓는 게 아닐까요. 도당할아버지 후계자의 말이다.

돌돌이를 마치고 굿청으로 돌아오면 화랭이는 일종의 장기자랑인 장문잡기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한다. 이어서 시루굿을 하는데 무녀가 방울을 흔들면 떡시루가 번쩍번쩍 들리게 해서 신이 굿을 잘 받았는지 보고 마을의 평안을 위해 축원 소지를 올린다. 복은 소지의 불길처럼 활활 일고 재가 날려 올라가듯이 바람에 실려 온 마을에 퍼진다.

다음에는 화랭이가 장고를 치며 창으로 당금애기 신화를 부르는 제석굿, 화랭이가 꽹과리를 치며 노는 터벌림, 원래는 없던 거리로 산신을 위한 산바라기, 천연두신을 위한 손님굿, 요즘에는 세습무권에서도 어디서나 하는 깃점을 치고 사실을 세우는 대감굿, 조상굿, 도당굿의 클라이막스인 군웅굿, 정업이라는 짚인형을 징치하고 태워버리는 뒷전 순으로 이어진다.

도당굿에서는 군웅굿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일반적으로 군웅굿은 장수신을 모시는 거리인데 도당굿에서 특이한 점은 화랭이가 군웅노정기를 서너시간씩 부르는 것이다. 군웅노정기는 군웅신이 굿판에 이르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긴박감을 준다. 그리고 굿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판소리가 어떻게 굿에 역으로 영향을 주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국문학도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장말 도당굿에서는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철야를 할 수 없게 되어 군웅노정기가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술에 취한 주민들이 굿청에 들어와 계속 훼방을 놓는 바람에 굿은 더욱 삭막해지고 말았다. 경기도 도당굿이 가까스로 맥을 이어가는 것은 장말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외다리 춤을 추면서 신화를 재현하는 행복한 장면을 이 땅 어디에 가서 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술꾼들이 벌이는 난장판에서는 주민들의 자부심도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었다.

<글사진/오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