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윤복희의 50년, 나의 35년

엊그제 동료가수 윤복희씨가 노래인생 50주년 기념공연 및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로선 심경이 꽤 착잡해졌다. 장하다 축하한다고 박수를 보내야 할건지, 아니면 뭐 그리 대단한 활동을 했다고 은퇴선언씩이냐며 눈총을 줘야 할건지, 그런게 아리송했다. 또 한편으론 남들은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하는데 나는 무슨 미련이 남아서 아직도 뭉그적대는 건지 하는 생각 때문에 뒤가 켕겼다.

내가 아직 은퇴를 못한 것에 대한 자그마한 위로는 그녀의 연예 생활이 장장 50년씩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겨우 이것저것 합쳐봐야 35년을 못 넘는다. 50년을 채우려면 은퇴는 한참 멀었다.

석달전 대형콘서트를 열었을 때 주변에선 나의 콘서트 타이틀을 최소한 35주년 기념공연이나 아니면 화끈하게 은퇴공연쯤으로 설정해야 표가 잘 팔린다고 설득했지만 나는 35주년이라는 숫자놀이도 싫었고 은퇴공연이라는 어휘도 괜히 싫어서 그냥 ‘새천년 콘서트’란 평범한 타이틀로 나갔다. 그래서 물론 표를 파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그러나 윤복희씨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진짜 경력이 50년이다. 반백년이다. 50년은 과장이 아니다. 아주 어린 소녀시절부터 정규 무대에 섰으니까 그렇게 된 거다. 내 생각엔 50년이라는 장대한 숫자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표가 팔려 나갈 것 같다. 우리 민족은 매사를 대충대충 주먹구구식으로 해치우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숫자엔 매우 예민하다. 화투판 같은 데서 피껍데기를 주워 모아가며 끗발 숫자를 합산해 내는 기술을 보면 우리는 가히 세계최고수준의 수학적인 민족이다.

그렇다면 윤복희씨의 50년만의 은퇴선언은 대대적인 환영을 받아 마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비록 지면상이지만 내가 이렇듯 윤복희씨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선 윤씨와 나는 동갑내기 친구다. 우리가 동갑내기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았다. 그러니까 처음엔 윤씨를 ‘누님’으로 불렀었다. 내가 올챙이 가수일 때 윤씨는 이미 대스타였다.

그 옛날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한국 가요계를 단숨에 제압하며 등장했고, 게다가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때 그토록 흠모했던 미남 가수 유주용 대선배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사이였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형수님 형수님’ 혹은 ‘누님 누님’으로 올려부르며 동생처럼 따랐었다. 그러나 윤씨가 이혼을 하고 어찌저찌 하는 사이에 나는 그녀와 동갑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즉시 나는 그녀를 ‘어이 윤씨, 어이 복희씨’로 끌어내려서 불렀던 것이다.

요즘도 내가 그녀를 친구처럼 호칭을 하면 그녀는 여전히 불만이다. 남자가 한번 형수면 형수고 한번 누님이면 누님이지, 어찌 그리 얄팍하냐는 게 불만의 내용이다. 그깟 호칭에 관계없이 윤복희는 한국 가요사에 길이 빛나는 이름이다. 특히 그녀의 선친과 나란히 이름을 날렸다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는 그토록 위대한 윤복희씨와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옛날에 윤씨와 나는 어느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 음악회에서 공연한 일이 있다.

아 그때 나는 노래를 막 부르다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낸 게 경호원들한테 권총을 꺼낸 것으로 오인되어서 혼쭐이 났고, 윤씨는 그녀의 대표곡 ‘여러분’을 부르면서 무대 가까이에 좌정한 높은 어르신 부부의 면전에 대고 계속 검지손가락질을 까딱까딱 해대며 특유의 ‘네가 네가 네가’를 불러대서 황당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 순간 윤씨가 무슨 이유로 엄청나게 열렬한 기독교 신자로 변신했음을 깨닫고 적이 놀랐다. 왜냐하면 순리대로 따져봐도 미국에서 신학대학까지 마친 내가 열렬한 기독교 신자여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종교로부터 멀리 밀려나 있고 오늘날 예기치 않게 친구 윤복희가 철두철미한 종교인으로 우아하게 변신해 버린 것이다.

그런 그녀가 대망의 은퇴를 선언했다.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은퇴를 못한다. 노래 주문이 안 들어와도 은퇴란 말은 못한다. 윤씨야 그녀가 믿는 하나님만 믿고도 살 수 있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돈과 명예를 더 강력하게 믿고 사는 경향이 있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 등록금도 내야 하고 아들녀석 미국대학 등록금도 내야 한다. 그게 내 형편이다.

윤씨가 은퇴를 하고 내가 계속 노래를 한대도 달라질 것은 딱 한가지밖에 없다. 그녀가 은퇴를 단행한 날 그녀에 대한 나의 호칭은 즉각 ‘아줌씨’로 나갈 것이다.

<조영남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