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과연 사람은 아름다운가

언젠가는 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달랐던 때가 있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분도 심했다. 그러나 요즘은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의 구분,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더 큰 자리를 잡아 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손자 귀여운 탓에 수염 뽑히는 할아버지들이 늘어나고 있고, 매우 도전적인 세대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세상을 비관하고, 탓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시를 가득 채운 자동차의 행렬과 거리의 빈틈을 점점 좁히는 사람들은 분주하게, 넘치도록 풍요로운 삶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다가가서 “행복 하세요?”라고 물어보면, “그냥 살아요”라고 대답할 것 만같다. 곧 지쳐버릴 삶의 표정과 함께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를 외쳤던 지난 시절의 함성을 이젠 잊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느리게, 조금은 모자란 듯, 그래도 꾸준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고, 문화의 세기를 선언했다. 경제적 위기와 빈곤을 극복했다는 소문이,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장담처럼 우스웠으나 속아 주었다. 스스로 가난을 구제하지 못할 바에는 광대의 재담에 추임새를 놓는 게 차라리 속 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스로 못난 탓은 없고, 조상 탓만 남았다고 문제의 핵심을 이리 저리 굴리기만 하는 토정 선생 같은 말재간에 괜히 화가 치민다. 그렇게 많은 세금을 거둬서 제대로 하는 일이 뭐냐. 돼 가는 꼴이 뭐냐. 이렇게 핏대를 올리고 싶어진다.

무력감에 깊이 빠져드는 40대의 축 처진 어깨 위에 팔팔하게 날을 세운, 무당 같은 형식논리 우선주의자들의 고함과 찢어지는 항변이 귀에 거슬린다. 더구나 남자와 여자의 오래된 조합을 맞바꾸려는 듯, 평등의 논리에서 차별의 논리로, 우선의 논리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비 논리의 순수한 형식논리를 멀건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

말이 말처럼 들리지 않는 세상엔 힘이 통했었다. 그런데 이제 힘의 논리가 정의와 진실로 포장된 폭로와 조작, 무조건 떠들어대기, 외면하기, 혼자 잘난 척 하기 등의 방식으로 달라졌다. 문화는 놋쇠 두드리는 소리처럼 시끄럽고, 삶의 의미와 예술의 가치는 액면가와 보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변했다. 사람이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사람들 때문이라면, 이 시대의 화두는 ‘사회성’이 될 것이다. 문화도 이 사회의 참 모습과 달라질 미래에 관해 어떤 대안이 있어야 한다.

함께하는 공동체의 삶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비판적 회의주의자들의 주장으로 비추어졌던 시대엔 정의와 민족적 동질성 회복을 위한 명분이 있었다. 현실적 자의식과 역사적 소명감에 관한 질문과 답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평등한, 나름의 목소리를 갖춘, 자유주의자들이 네 활개를 마음껏 펼치는 시대에는 우울한 햄릿과 속물들만 남았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뺏은 덴마크의 왕을 향한 햄릿의 분노와 복수심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했고, 미친 햄릿은 망명과 죽음의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성’에 대한 예술과 문화의 대안은 무엇인가.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진, 풍요와 번영의 헛된 약속을 신봉하는 물신주의자들의 냉담한 가슴을 두들겨 울림이 있는 소리를 만들 방법은 없을까. 예술과 산업이 옷을 갈아입는 시대에 대중과 순수가 뒤엉켜 혼돈이 질서를 잡아먹고, 몸이 정신을 지배하고, 밤과 낮이 뒤바뀌는 세상에 예술은 과연 무엇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예술이 이해될까. 예술이란 것이 과연 필요하기나 한 것인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진실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지를 구분하는 것은 상대적 논리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람이 예술보다 아름답고, 자연보다 숭고하고, 물질보다 귀하다는 절대적 정신은 변함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우리는 ‘사회’라고 한다. 그 곳의 생리와 원칙과 논리가 현실과 맞닿을 때, 우리는 ‘사회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사람이 아름답다는 기준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필요로 한다. 조금은 느리게, 모자란 사람도 꾸준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그립다.

<김창화 상명대 교수 ·연극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