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한국을 위하여-뿌리깊은 학맥·인맥 편견>사회전반 ‘특혜구조’로 소외층 낳는다

한 대형 백화점업체 홍보실에서 근무하던 K(24)양은 지난 4월 사표를 냈다. 그는 비록 전문대 출신이었지만 부서의 상사로부터 ‘똑소리나게’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터였다. 그런 그가 사표를 낸 이유는 대학편입을 하기 위해서였다. 대졸 출신과 비대졸 출신을 가르는 눈에 보이지않는 차별을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취업이란 다양한 편견, 차별의식과의 또다른 만남을 의미한다. 좁은 취업문을 어렵게 뚫고 기업이나 정부부처, 관공서에 안착하는 순간 직장인들은 또다른 차별의 벽에 갇히고 만다.

채용정보업체인 잡링크가 최근 1776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장내 차별대우’에 대해 조사한 결과 대다수 직장인(78%)이 자신의 조직내에 학력, 외모, 나이 등에 따라 차별대우가 존재하며 이 가운데 학력·학벌의 차별이 가장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3분의 1인 29.4%가 학력·학벌의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서울·수도권대와 지방대, 일류대와 삼류대로 나뉘어 입사과정부터 적용되는 학벌차별이 입사 후에도 업무 배치나 승진 등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기업내 차별문화는 소외되는 계층을 낳는다. 또한 업무배치와 인사차별을 통해 특혜를 누리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간의 위화감은 권력의 불평등의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풍토가 지속되는 한 21세기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여겨질 것이 뻔하다.

정부 부처라고 예외는 아니다. 학력 수준이 비교적 균질화된 정부 부처에서는 일반기업과는 다른 형태의 차별이 존재한다. 그것은 고시출신을 우대하는 경향과 비고시출신에 대한 차별적 대우다.

건설교통부의 경우 지방청을 포함, 6급 이하 직원수가 전체 정원 2364명중 1849명으로 7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5급 이상 국·과장급 보직을 보면 고시출신이 66%, 사관학교 출신이 33%를 점유하고 있다. 일반직 출신 비율은 1%도 채 안된다.

건교부 본부직원 중에도 일반직 출신은 과장 4~5명, 국장 2명이고 1급은 아예 없다. 그래서 6급 이하 하위직의 태반을 차지하는 일반직 직원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5급 승진자까지도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사례가 늘었다. 급기야 건교부 공무원직장협의회는 최근 상부에 “조직의 형평성과 사기진작 차원에서 일반직 출신의 국·과장 보직을 확대해달라”는 건의문을 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임인택 건교부 장관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료사회는 행정고시 출신을 우대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과장급 이상은 거의 행정고시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아무리 박사학위를 갖고 전문지식과 학력을 갖추었다 해도 고시 출신이 아니면 ‘성골’반열에 끼지도 못한다.

정보통신부 모 서기관은 이른바 일류대인 K대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2개나 딴 ‘실력파’다. 하지만 국장 승진은 꿈도 꾸지 않고있다. 그는 그동안 자신보다 한참 어린 고시출신을 항상 상사로 모셔왔다.

정부부처 중에서도 경제부처는 같은 고시출신이라도 재정경제부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또한번 운명이 달라진다.

‘부처중의 부처’로 꼽히는 재경부는 인사적체 현상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른 부처로 인사이동이 가능하다. 만약 다른 부처가 재경부의 인사요청을 거절할 경우 행정업무 협조를 받는 데 곤욕을 치러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따라서 각 부처의 상당수 요직은 재경부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청와대 등에 줄이 닿는 재경부 출신 고위간부가 ‘자기사람’을 심기 위해 각 부처 인사에 개입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최근 기업체들 사이에는 ‘인재 키우기’바람이 불고 있다. 월드컵 이후 출신배경을 따지지않고 기용하는 ‘히딩크식 경영’에 대한 연구도 유행이다.

또 기업의 인재관도 많이 바뀌어 신입사원 평가단계에서부터 학력란을 없애 출신학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있는 기업도 있다. 학력에 상관없는 새로운 ‘인사평가’ 모델을 개발, 시행중인 삼성전자는 최근 지난 5년간 자사 임원급 인사 1200명을 조사한 결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명문대 출신은 12%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단체 ‘학벌없는 사회만들기’ 김동훈(국민대교수) 사무처장은 “기업이나 정부부처가 외부와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력 있고 도전의식을 가진 인재를 뽑아야한다”며 “조직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력이나 출신집단보다는 능력이 인정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양수기자 yspark@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