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한국을 위하여-비정규직 근로자>730만명 저임금·신분불안 고통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사용자의 위협으로 노동조합 결성은 꿈도 못꾼다. 의료보험, 국민연금등 4대보험 혜택도 제한적이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73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요약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임시, 일용, 파트타임, 파견노동자 등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실제 계약에서는 사내하청, 용역직, 특수고용, 계약직 등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자본의 유연화 전략이라는 명목으로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 만큼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 격차는 벌어졌고 차별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1 ‘작업복 색깔부터 다르다’

전남 광주시 하남공단에 있는 C에어컨 제조업체. 각기 다른 색깔의 작업복과 안전화를 착용한 노동자들이 섞여 일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작업복 색깔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신분차이를 드러내는 ‘낙인’과 같다.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않는 임금 말고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작업복의 색깔 차이 만큼이나 선명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식권이 제공되지 않는다. 추석때 정규직이 받는 ‘명절선물’도 없다. 나이가 훨씬 적은 작업반장으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듣는 욕설도 이들에게 커다란 모욕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 회사에서 2년간 근무해 오다 지난 8월 해고당한 이모(32)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모욕을 받고도 생계 때문에 어쩔수 없이 견뎠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해고통보”라고 말했다. 회사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이 회사 비정규직 노동자 400여명 중 10명은 현재 회사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중이다.

#2 ‘정규직 평균연봉의 3분의1’

한 자동차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41)씨의 월 평균 임금은 80만원. 기본급은 56만원에 불과하고 그나마 잔업 40시간을 채워야 나머지를 받을 수 있다. 이 공장에서 김씨와 처지가 비슷한 노동자는 700여명 정도. 이들은 모두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정규직 평균 연봉 3500만원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연봉 1000만원을 받고 있다.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김씨는 “역시 비정규직인 아내와 맞벌이를 해야 겨우 학비와 생계비를 벌 수 있다”며 “그나마도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한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3 ‘여성 노동자 70%가 비정규직’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조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모(38)씨.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휴직상태에 있는 남편과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이씨는 한달에 6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기 위해 열악한 근무환경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학교가 겨울방학에 들어가면 계약이 정지되기 때문에 임금도, 연차수당도 지급되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는 정규직이 156만명(29.1%), 비정규직이 379만명(70.9%)으로 비정규직이 2배이상 많다. 자녀 육아기를 거친 여성이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려 할 때 제공되는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인데서 비롯된다. 여성 노동인구의 비율이 높은 영양사, 학습지 강사, 보험모집 업종 등의 계약직 전환율은 거의 100%에 이른다.

#4 ‘노조결성〓해고’

S물류업체의 비정규직 파견업체 직원 유모(35)씨는 지난해 3월 동료 35명과 함께 노조를 만들었다. 그러자 회사측은 지난해 11월 유씨 등 노조지도부 4명을 해고했다. 김모(41)씨 등 R가스렌지 제조업체의 계약직 AS사원들은 지난 6월 회사의 재계약 조건이 불공평하다고 판단,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방노동위원회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전원해고 통보. 90년대 들어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레미콘 운송 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면 무조건 해고된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회사 취업의 길까지 막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레미콘 노동자 고모(39)씨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특수고용으로 바뀌면서 2만명중 정규직은 500여명에 불과하다”며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의 사각지역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shkim@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