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고천암 갈대의 군무 눈이 간지럽다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 갈 곳이 없구나 백두대간을 타고 온 단풍 행렬도 땅끝 마을에서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이정석 시 ‘가을 땅끝에서’부분)

더 이상 발디딜곳이 없는 땅끝. 깊어가는 가을, 땅끝에 서서 사람들은 길의 끝을 보는 것일까, 아니면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것일까.

땅끝마을이 자리한 전남 해남에는 나그네의 스산한 가을 정서를 부드럽게 달래주듯 해안선을 따라 황금빛 갈대가 한창이다.

해남 고천암호. 해남읍에서 땅끝으로 내리닫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진도 가는 18번국도를 타면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접경에 장장 55만여평규모의 국내 최대 갈대밭이 해남읍과 화산면, 황산면 일대에 펼쳐져 있다. 고천암호를 둘러싼 갈대군락은 둘레만 14㎞에 달한다.

고천암호는 순천 대대포구의 갈대밭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갈대밭으로 알려져 있다.

해질무렵 갈대밭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마음을 비우고 달려보자. 호반의 잔잔한 수면과 하늘거리는 갈대가 눈부신 역광에 반짝이며 잿빛에서 은빛으로, 다시 황금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노라면 누구라도 여정(旅情)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갈대밭 너머 호반 한가운데에는 또 20만여평에 이르는 갈대섬이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11월 중순이면 만개한 갈대꽃이 솜처럼 부풀어 올라 눈발같은 솜털을 날려보낸다.

고천암호 일대 갈대밭은 지난 81년 고천암방조제축조 이후 생겨났다. 고천암방조제가 들어선 이후 150만여평의 담수호가 모습을 드러냈고, 간척농지만도 600만여평이 새로 만들어졌다.

갈대가 무성하게 된 것은 전체 수심이 80㎝미만의 저습지로 잡석이 섞이지 않은 질이 좋은 갯벌이기 때문이라는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드넓은 갈대밭이 형성된 이후 초겨울의 고천암호 일대는 역동적인 생태계의 현장이 됐다.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변한 것이다. 매년 늦가을 이맘때쯤이면 가창오리떼가 날아오기 시작, 11월 하순쯤이면 25만여마리가 겨울 하늘에 화려한 군무를 펼쳐보인다.

철새무리중에는 기러기, 큰기러기, 쇠기러기,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부터 세계적 희귀조라는 먹황새는 물론이고, 수리류 등 맹금류까지 수십여종의 조류들이 아름다운 갈대밭위로 비상하며 한겨울을 난다.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풍광에 푸근한 마을사람들 인심까지 만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해남군민들은 고천암 갈대밭에서 ‘갈대와 농심의 만남’을 주제로 11월 2~3일 이틀간 제2회 해남고천암갈대축제를 연다.

관 주도로 열리는 여타 향토축제와 달리 해남습지보전모임, 땅끝문학회, 해남군여성단체협의회, 화산청년회 등 해남일대의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축제비용을 부담해 행사를 마련했다.

축제에는 남도입심한마당 등의 흥겨운 구경거리부터 외지 관광객을 위해 갈대, 짚풀공예, 천연염색, 쌀떡 만들기, 고천암 생태탐사, 철새먹이 만들기 등 10여종의 체험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축제조직위(061-536-6456) 기획담당 박상일(44)씨는 “자연생태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선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절대적”이라며 “축제는 여기 주민들이 고천암호 일대를 환경농업단지로 발전시켜 가자는 다짐”이라고 말했다.

/ 해남〓글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