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기자의 만화창고>찌든 생활속 슬픈 에피소드 가족애 담아 따뜻하게 묘사

한국 만화를 고를 때마다 안타까운 점은 생활속의 소소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내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폭넓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흥미라는 작가에 상당한 기대를 갖게 된다.

‘상처’ ‘This’ ‘In Seoul’ 등의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는 만화속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지리멸렬한,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다. 그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바쁜 일상과 복잡한 머릿속을 만화로 포착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집’(대원에서 4권으로 완결·사진) 역시 문흥미의 이런 재능이 만화적 상상력과 결합되면 얼마나 특별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만화다.

부모님과 귀순, 귀하, 귀찬, 귀리 네 남매로 이뤄진 가난한 한 가정이 주인공. 보통 집안들이 그렇듯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절약으로 무장한 어머니가 있는데도 귀리네 집은 늘 가난하다. 온동네를 샅샅이 쓸어간 도둑도 피해갈 정도의 이 가난한 가족이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친구와 함께 귀가하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 쓰러진 아버지를 발견하고 절망하던 사춘기의 기억이라든지, 술에 취한 날이면 밤새 자식들의 손을 꼭잡고 술주정을 되풀이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등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보았을만한 에피소드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아이도스’ ‘나이카’ 등의 ‘짝퉁’만을 입어왔던 귀리에게 온갖 명품으로 치장한 ‘트렌디한’ 남자친구가 생기고 둘은 서로 다른 생활환경과 의식구조때문에 티격태격 싸우며 사랑을 키워간다.

문흥미의 장점은 자칫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로 흐르기 쉬운 가난의 문제를 만화답게 밝고 경쾌하게 표현해낸다는 데 있다. 그가 그려내는 이 경쾌함은 가난의 현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고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한번쯤은 가난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읽을 수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 이영미기자 misquick@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