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찬칼럼>후세인의 허상

지난 13일 미군에 의해 체포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의 대통령의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반응도 달랐다. 미국이나 서구문화권에서는 환호와 안도의 표정을 보였는가 하면 아랍세계에서는 실망과 분노와 허탈감까지도 보여 주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톰 프리드만은 생포된 후세인의 모습을 “인간 늑대(werewolf)”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땅굴에서 기어 나와 총 한방 쏘지 못하고 미군에게 붙잡힌 후세인, 마치 길거리에 버려진 한 노숙자와 같은 후세인의 얼굴을 본 아랍세계는 한마디로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너무나 황당했기에 후세인의 딸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자기 아버지에게 약을 먹여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지난 18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할 정도다.

아랍세계의 뉴스 미디어는 심지어 미군이 잡은 후세인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는 음모설도 내 놓았다. 이것이 아랍세계의 언론이다. 사실보다 음모설이 더 설득력을 가지고 있고 사실의 정확성보다는 아랍민족주의 감정과 이념이 뉴스를 지배하는 세계다.

그러나 이러한 아랍세계에서도 전세계에 방영된, 포로로 잡힌 후세인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미군 군의관에 의해서 신체검사를 받는 굴욕적인 장면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믿어지지가 않는 후세인을 본 것이다. 상징을 벗어버린 인간 후세인을 보았다.

그렇다. 이제까지 자기들이 보아온 후세인은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지난 봄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후세인의 동상을 무너뜨린 순간부터 후세인의 상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후세인이라는 인간의 실체가 잡혔을 때 그의 상징성은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이제까지 아랍세계가 후세인에게서 본 것은 상징이었다. 이슬람문명권이 자랑하는 12세기 십자군전쟁에서 이슬람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온 전설적인 장군 살라딘(Saladin)의 재현을 후세인에게서 찾고 있었고 후세인 자신도 자기가 살라딘의 환생(reincarnation) 이라고 믿고 있었다.

후세인은 아랍세계와 이슬람문명권 긍지의 상징이었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서 세계를 지배해온 서구 기독교 문명권에 도전하는 이슬람문명권의 상징이었고 세계를 제패하는 유일한 세력 미국에 대결하는 용맹의 상징이었다.

아랍세계를 휩쓸고 있는 반미감정이나 세력은 구 소련이 넘어진 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국으로 남은 이후 더욱 심해진 것이다. 미국의 힘을 견제하던 소련의 힘이 사라진 것은 미국으로 봐서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세계 유일의 초강국이 된다는 것은 거기에 정비례하는 반감의 증대도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하는 것이다. 정당하든 정당치 않든 자신들의 불만을 모두 미국 탓으로 돌리는 아랍-이슬람권의 극단적 반미정서는 후세인의 종족살상 잔인성과 폭군적 독재정치뿐 아니라 같은 이슬람권인 이웃나라의 침략행위에도 불구하고 그가 초강대국 미국에 대항할 수 있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아랍민족주의와 이슬람문명권의 긍지의 상징으로 등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후세인의 항복은 바그다드 함락이후 아랍-이슬람세계가 서구 특히 미국으로부터 받은 또 하나의 치욕의 경험이었다. 후세인의 항복에서 아랍세계의 긍지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후세인이 미군들과 싸우다가 장렬한 전사를 했든지 아니면 자살을 했더라면 후세인이라는 실체는 사라졌어도 그 상징과 신화는 살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후세인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후세인의 상징은 오히려 죽고 말았다. 바로 이점이 아랍세계가 경험하는 좌절과 실망이다.

이제는 아랍세계가 후세인같은 지도자를 통해서 이슬람 문명권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민족주의의 이상을 찾으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아랍민족주의 새로운 상징이 창조되어야 한다. 후세인이라는 상징은 언젠가는 깨어져야 할 허상이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이제는 대량살상무기를 자발적으로 폐기하겠다고 나왔다. 자기 뿐 아니라 중동의 다른 나라들도 이러한 대량살상 무기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미국과 영국에 의한 압력이 주원인이 되었겠지만 카다피 자신도 아랍세계의 극단적 민족주의와 폭력주의의 한계를 인정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아랍의 민족주의는 불행히도 이슬람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토양에서 주로 성장해 왔다. 아랍세계에 건전한 민족주의와 찬란한 이슬람의 문예부흥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상징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노영찬 / 美조지메이슨대 교수]]